1993년 미국 인디언 나바호족(族)에 갑자기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환자가 발생했다. 첫 환자는 21세 여성이었는데, 곧이어 그녀의 애인도 감염됐다. 감염자의 3분의 2가 목숨을 잃을 만큼 무서웠다. 폐에 염증이 생기고 물이 차올랐다. 일부 환자는 발병 1주일 안에 숨을 거뒀다. 처음엔 영문을 몰라 스페인어로 ‘신 놈브레(이름 없는)’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나중에 쥐가 원인이란 걸 알게 됐고 ‘한타 바이러스 폐증후군’이란 긴 이름을 붙였지만 다들 ‘나바호병(病)’이라고 불렀다. 애꿎게 반(反)인디언 바람이 불었다. 모르면 두렵고, 두려우면 낙인찍는다.

▶'감염 공포'는 세 요인에서 비롯된다. 첫째는 병이 이웃에 퍼진다는 점이다. 기침·재채기를 통한 비말 감염, 공기 감염일 때 더 무섭다. 둘째, 역병 확산이 즉각적이란 점이다. 유행 패션이나 노래보다 훨씬 빠르다. 항공 여행이 자유로운 '지구촌' 시대에 감염 공포는 늘 임박한 위험이다. 중세 흑사병이 북유럽 끝에 닿기까지 4~5년이 걸렸다면 우한 폐렴은 한 달 안에 지구를 돈다. 셋째는 바이러스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적보다 무서운 건 없다.

▶학자들은 지난 40년 가장 위협적이었던 감염병으로 '에이즈, 사스, 조류인플루엔자'를 꼽는다. 사람들은 '피해' 환자가 '가해' 전파자도 되는 감염 공포의 이중성을 절실하게 겪었다. 이것은 잠재적 매개자인 이웃에게 '거부감'으로 나타났다. 다시 '수퍼 감염자(者)' 혹은 '수퍼 감염지(地)'를 주목하는 '낙인찍기' 현상이 빚어졌다. 사해동포적 유대감이 흔들렸다.

▶우리 정부는 중국 후베이성을 2주 내 갔다온 외국인은 내일부터 입국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먼 나라들도 앞서 시행하고 있는 조치다. '뒷북 대응'이지만 안 할 수 없다. 국경선을 넘는 바이러스 전파는 '외국군 침략'과 비슷한 심리적 공포를 안긴다는 연구 논문도 나와 있다.

▶우여곡절 끝에 우한에서 귀국한 교민 700여 명이 충북 진천과 충남 아산에 있는 임시 생활시설에 입소를 완료했다. 자신이 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국가가 강제하는 ‘격리 조치’다. 프랑스 지인이 그 나라에서 ‘더러운 중국놈’이라는 구호와 함께 반아시아인 차별 움직임이 있다는 기사를 보내왔다. 중국인과 아시아인을 한데 뭉뚱그려 격리하고픈 심리가 드러나 있다. 감염 공포는 생명의 위협과 격리의 두려움에 맞닿아 있다. ‘감염’ 그 자체보다 ‘감염의 공포’가 인간 사회를 더 망가뜨린다. 그러나 공포를 이겨내는 것도 인간의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