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영석

1962년 봄, 나는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73세인 P 틸리히 교수의 종강식에 참석했다. 그 뒤에 그는 5년 계약으로 시카고 대학에 재임용되었다. 78세까지 강의하는 것이다.

23년 후에 내가 연세대학에서 종강식을 가졌다. 후배들의 진출을 고려했고, 한 대학의 교수로 남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대학 정규 강의를 끝내기로 했다. 사회 교육에 전념하며 대학 특수 과정 강의는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독서 운동을 비롯한 시민사회 단체에 도움을 주기도 했으나 개인적으로 하는 자유로운 봉사가 더 효과적이라는 경험을 얻었다.

대학을 끝낸 후에 철학적인 저서를 몇 권 남겼고 대학에 있을 때보다 더 성숙된 강의, 강연을 했다. 이론적 학문과 더불어 실천적 진실과 진리에 뜻을 모았다. 70대가 끝나면서 반성해 보았으나 내가 정신적으로 늙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90이 될 때까지는 그 정신적 위상을 지켜보자는 의욕을 갖고 열심히 일했다. 내 사상이 일을 만들고 일이 지적 수준을 계속 유지해 주었다.

그러는 동안에 90을 맞게 되었다. 두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함께 일하던 김태길, 안병욱 교수가 활동 무대에서 떠나갔다. 곧 내 차례가 될 것이라는 허전함이 엄습해 왔다. 정신력에는 변함이 없고, 창의적이지는 못해도 그 위상은 유지할 수 있는데 신체적 여건이 뒤따르지 못했다. 그때 얻은 인생의 교훈은 사람은 누구나 노력하면 60에서 70대까지는 정신적으로 성장, 성숙할 수 있고 그 기간에 맺은 열매가 90까지 연장되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체험과 자신감이었다.

90 고개를 넘었다. 나 혼자 남은 것 같은 정신적 분위기였다. 이제부터는 내가 나를 가꾸고 키워가자는 다짐을 했다. 정신적 기능과 일에서는 노쇠 현상을 모르겠는데 신체적 늙음은 계속됐다. 정신과 육체 사이의 간격이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인간적 성장은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이 많고 후배와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모범과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는 의지는 감소하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그 정성 어린 노력이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까지 나를 이끌어 주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한 기간은 40에서 60대 중반까지였고 지금 와서는 97세에서 100세까지가 되었다. 올해 4월이면 만 100세가 채워진다. 그때까지는 지금의 삶과 일을 연장해 갈 생각이다.

‘너 늙어 봤냐, 난 젊어 봤다’는 노래가 있듯이, ‘너 100세까지 살아 봤냐? 난 90세까지 경험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30대까지는 건전한 교육을 받는 기간이다. 60대 중반까지는 직장과 더불어 일하는 기간이다. 60대 중반부터 90까지는 열매를 맺어 사회에 혜택을 주는 더 소중한 기간이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