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 결선 무대에 파란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나왔다. 앳된 얼굴이었지만,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되자 힘찬 활놀림으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빚어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관객들은 눈을 떼지 못했고, 열다섯 나이에 한국인 최초로 2위를 거머쥐었다.

오는 31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독주회를 앞두고 서울에 온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34)은 "그때 난 나이가 어려 청소년 부문에 출전할 생각이었는데 어이없게도 신청 기한을 놓쳤다. 경험 삼아 성인 부문에 나갔다가 결선에 올랐다는 걸 알고는 너무 무서워 엉엉 울었다"고 했다. 막상 객석을 가득 채운 청중과 눈을 마주하는 순간 모든 걸 내려놨다. "완전히 빠져들어서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내는지도 모르는 채 몸을 움직였어요. 마지막 음을 냈는데 믿기지 않는 반응이 터져서 정말 놀랐죠."

22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은 “유튜브 채널에 달리는 댓글을 하나씩 다 읽는다”고 했다. “음악은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잖아요. 치유를 받는다는 말씀을 보면 내면으로 깊이 파고드는 클래식의 힘이 느껴져 뿌듯해요.” 악기는 1666년 제작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쓴다.

한국 청중에겐 해외보다 덜 알려진 연주자이지만 한수진은 열두 살 때 이미 실내악 공연장으로 명성이 높은 런던 위그모어홀에 데뷔한 '숨은 보석'이다. 열세 살 때부터 영국 내 거의 모든 음악상을 석권하며 두각을 드러냈고, 유럽 무대를 돌며 명피아니스트 언드라시 시프와도 협연했다. 바이올린 거장 기돈 크레머는 "뛰어난 테크닉과 놀라운 표현력, 깊이 뿌리 박힌 진지함과 진정성 있는 음악이 매우 인상적"이라고 했고, 바이올린 여제 정경화는 그의 연주를 듣고 자신의 뉴욕 아파트 옆집에 머물게 하며 레슨을 해줬다. 지휘자 정명훈은 오디션 후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 칭찬하며 그와 여섯 차례 협연 무대를 가졌다.

그러나 "인생에서 계획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갑자기 입이 안 벌어졌고 종종 이상한 소리가 났다. 턱에서 통증이 일기 시작하면 진통제를 들이부어도 소용이 없었다. 아픔을 꾹 참았지만 시련은 20대 중반의 그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그대로 뒀다간 바이올린을 놓아야 할 거란 의사의 진단에 결국 턱관절을 바로잡는 수술대에 올랐다. 1년 반 정도면 충분할 줄 알았지만 수술과 회복, 재활에 무려 6년이 걸렸다. 그중 절반의 시간은 악기를 아예 쥐지도 못했다. 다행히 그는 "미련할 만큼 긍정적인 성격"이었다. 해양생물 연구를 하는 부모님을 도와 실험에 참여하고, 화장품 판로를 개척하고, 웹디자인을 하고, 컨설팅 업체 콘퍼런스에서 동시통역도 했다. "그러면서 뼈저리게 깨달았죠. 세상에 음악만큼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건 없구나!"

흘려보낸 시간이 아쉬울 법도 하건만 다시 바이올린을 쥔 그는 무대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만 있다면 공연장이 어디든, 누구와 함께든 상관없다 싶었죠." 지난해 10월 음대생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또모'에 출연해 공연을 알리는 인터뷰를 한 것도 "클래식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을 단 한 명이라도 만들 수 있다면 행운이고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차분한 어조로 바이올린 곡에 얽힌 역사와 사연을 조곤조곤 설명하는 그에게 네티즌은 "바이올린의 여신" "마약 같은 존재"라며 열광했다. 열띤 반응에 힘입어 아예 자신만의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한국어·영어 두 버전으로 곡에 담긴 죽음의 그림자나 작곡가의 허무에 찬 울부짖음 등을 알기 쉽게 풀어줘 구독자가 4만이 넘는다. "저는 연주자도, 듣는 사람도 프리즘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빛이 들어가도 프리즘에 따라 나오는 스펙트럼은 달라지니까! 클래식 기악곡도 노랫말만 없다뿐이지 곡마다 스토리와 사연이 있거든요. 그걸 최대한 많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02)525-6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