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 요리는 부야베스 아니면 잘 먹지 않는데…." 세리(손예진)가 새침하게 말하며 조개를 받아들자, 북한군 장교 리정혁(현빈)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어쩌면 내가 전혀 몰랐고 짐작도 하지 못했던 어떤 세상과 부딪치는 일은 아닐까. 요즘 화제인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재벌 가문의 상속녀인 세리는 패러글라이딩을 하다 실수로 북한 땅에 착륙한다. 세리와 우연히 마주친 북한군 장교 리정혁은 군 수뇌부가 알아채기 전에 그를 말썽 없이 남한으로 돌려보내려 좌충우돌한다. 개연성 없는 비현실적인 드라마라고 코웃음 칠 수도 있겠다. 몇몇 장면은 그러나 뜻밖에도 제법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어떤 것일까'라는 물음이다.

"부야베스 아니면 조개 요리는 안 먹는다"고 말하고, "뭐든 세 숟가락 이상은 먹지 않아서 내 별명이 '짧은 입 공주'"라던 세리는 모닥불에 구운 조개를 까먹으면서 당황한다. 심하게 맛있어서다. 북한 병사 김주먹(유수빈)이 빈 조개껍데기에 소주를 따라 건넬 땐 그래도 도리질을 한다. "난 해산물엔 소비뇽 블랑밖엔 먹질 않아서…." 몇 초 지나 조개껍데기에 담긴 소주를 홀짝 마셔본 세리는 그러나 이렇게 묻고 있다. "여기 설탕 탔니?"〈사진〉

아녜스 자우이 감독의 영화 '타인의 취향'도 비슷한 순간을 그린다. 중소기업 사장 카스텔라는 생전 소설도 연극도 본 적 없는 사람. 연극배우 클라라에게 빠져들면서 그의 삶은 달라진다. 연극을 보고 영시(英詩)를 읽고 그림을 사들인다. 클라라는 그런 그를 계속 비웃지만, 카스텔라는 어느덧 예전의 그가 아니다. 자신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림을 샀느냐는 클라라의 물음에 카스텔라는 이렇게 대답하게 됐으니까. "왜 내가 그림 자체를 좋아해서 샀다고 생각하진 않으시나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성(城)에 살지만, 결정적인 누군가를 만나면 결국 그 벽을 허물게 된다. 해산물엔 소비뇽 블랑밖에 마시질 않는다던 세리는 이젠 찬 바람 불면 조개껍데기에 따라 마시는 소주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리정혁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의 세상과 충돌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