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 교수, 유희석 의료원장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이국종 교수에게 유희석 아주대 의료원장이 욕설이 섞인 전화를 한 사실이 보도되면서 이 교수와 병원 측의 갈등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 교수 측은 병원이 노골적으로 편법을 써가며 외상 환자 진료를 가로막았다고 토로한다. 이 교수는 "열심히 외상 환자 보는 의사를 병원이 범죄자 취급하고 병신을 만들어 버렸다"고 말했다. 외상센터 의료진은 15일 "해군 태평양 항해 훈련에 참가했다가 돌아온 오늘도 분을 참지 못하고 외상센터를 그만둘 작정인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의료원 측의 말은 다르다. 이 교수가 무리하게 헬기 이송을 늘려서 대구나 제주도까지 날아가서 외상 환자를 실어오고 있어 안전상의 문제 등을 지적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언론과 정치권을 활용하고, 병원 경영을 문제 삼으면서 독선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이 교수를 바라보는 의료원 측의 시선이다. 이런 갈등이 커지면서 중증 외상 환자에 대한 진료가 위축되면 환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국종 교수와 병원장의 10년 대립

이 교수는 지난 2011년 아덴만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됐다 구출되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치료하면서 '의료 영웅'으로 떠올랐다. 늘 수술복을 입고 전쟁터 같은 응급 치료실을 지키는 그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이 교수는 당시 공로로 명예 해군 대위 계급장을 달았다. 현재는 명예 중령이다.

하지만 갈등은 그때부터 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당시 병원장이던 유희석 의료원장과 외상센터 운영 방식, 의료진 배치, 헬기 이송 범위 등을 둘러싸고 다툼이 잦았다고 외상센터 관계자는 전했다. 최근 공개됐지만, 유 의료원장이 이 교수에게 "때려치워 이 XX야"라고 욕설 통화를 한 시점은 약 5년 전이라고 한다. 당시 외상센터 인력 배치에 따른 의견 충돌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6년 아주대는 건립비 300억원, 운영비 연간 60억원 등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아 100병상 규모의 권역외상센터를 열었다. 당시 이 교수는 본격적인 외상센터 개원으로 의욕이 넘쳐 있었다. 아주대는 경기 남부 관할 권역외상센터인데도 이 교수는 전북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환자도 헬기를 타고 날아가 데려왔다. 백령도, 연평도 등 서해 도서 지역은 인천 길병원 권역외상센터 관할 지역이지만, 섬에서 발생한 외상 환자도 헬기로 싣고 왔다. 중증 외상 환자를 극적으로 살리는 사례가 뒤따랐고, 세상은 이 교수에게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병원 측은 "헬기가 해상 운영에 적합한 기종이 아니고, 그에 따른 안전 장비를 갖추지도 않았다"며 무리한 헬기 이송을 자제하라고 이 교수에게 요구했다. 헬기 운영 범위로 다툼이 잦아졌다. 지방의 권역외상센터 일부에서는 관할을 넘어서는 이 교수의 무리한 헬기 이송에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헬기 출동에 따른 소음도 갈등 요인이 됐다. 주변 아파트에서 소음 관련 민원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헬기 이착륙 상황을 촬영해 환자를 이송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민원이 나오기도 했다. 환자 이송이 없는 경우는 훈련 상황이었는데, 병원은 훈련을 줄이라고 했다. 이 교수 측은 듣지 않았다. 그러자 병원은 헬기 이송 지원 예산을 줄여 충돌을 빚었다. 헬기 안전 문제도 불거져 최근에는 의료진 헬기 탑승이 중단됐다.

◇외상 환자 진료 범위 축소 논란

아주대 권역외상센터 당직실에는 각지에서 발생한 중증 외상 환자 구조 요청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외상 전담 전문의가 "지금 비어 있는 병상이 없어서 환자를 더 받을 수 없다"며 환자를 보내지 말라고 하기 일쑤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가 경기도 소방본부 119에 '외상 환자 수용 불가'를 통보한 횟수가 지난해 63번이다. 날짜로는 약 36일이다.

지난해 센터로 실려온 외상 환자는 2627명. 이 중 손상분류척도(ISS) 15점 이상의 초중증 외상 환자는 1090명이었다. 전체의 42%로 국내 최고 중증도 비율이다. 주로 다발성 골절이나 쇼크 상태 환자들이다. 이에 중환자실 병상이 국내 최대 규모인 40병상(전체 100병상)임에도 항상 꽉 차 있어 비어 있는 날을 찾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개별 환자 치료 기간이 길어지고, 병상을 차지하는 날이 길어져 '풀 베드(full bed·병상이 꽉 찬 상태)'인 날이 잦다.

이런 상황에서 이 교수는 추가 병상 확보 문제로 아주대병원 본원과 갈등을 빚었다. 병원은 외상센터를 제외하고 1087병상으로 한정된 상태에서 암, 심장병, 뇌졸중 등 40여개 진료과 환자도 받아야 하기에 외상 환자에게 무한정 병상을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달 만에 귀국해 석해균 선장 찾아가

15일 이 교수는 경남 진해 군항을 통해 한 달 만에 귀국했다. 지난해 12월 14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해군 순항훈련전단 문무대왕함(4400t)에 올라 장기 해외 훈련 함정의 의료 체계를 점검했다. 당초 이날 오전 10시 30분 입항 행사에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논란을 의식한 듯 예정보다 일찍 진해 군항을 빠져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입항 행사를 피한 이 교수는 약 1시간 뒤인 오전 10시 20분쯤 인근 해군교육사령부 리더십센터에서 교관으로 있는 석해균 선장과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석 선장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이 교수가 '귀국했으니 잠깐 보자'고 해 1시간 정도 만났다"며 "안부를 묻는 수준의 일상적 대화를 주로 나눴으며, 최근 논란과 관련한 대화는 없었다"고 밝혔다. 의료계에서는 "이 교수가 자신을 전국적인 인물로 만들어준 석 선장을 만나 무언가 결심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