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서울에 두 명의 권법가(拳法家)가 맞부딪치면서 보여주는 비무대회가 우울증에 빠져 있는 중년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바로 진가권(陳家拳)의 진중권과 유가권(柳家拳)의 유시민이다. 권법은 칼이나 창과 같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주먹과 발차기, 그리고 박치기로 맞붙는다는 특징이 있다. 말과 글, 그리고 인터넷이 주요한 권법의 초식이다. 진가권과 유가권은 원래 같은 태극권 문파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서로의 초식과 공격 양태를 잘 알고 있다. 진가권이 휘두르는 가장 강력한 권법은 철사장(鐵沙掌)이다. 거친 모랫바닥에 손가락을 찔러 넣는 피나는 수련 끝에 도달하는 철사장은 상대방의 취약점을 정확하게 가격한다. 말 그대로 철사장이다. 이 철사장의 위력은 대단하다. 이걸 맞으면 상대방의 뼈가 부러지거나 피멍 든 손자국이 난다. ‘조국 사태’ 이후로 발휘되는 진가권의 철사장은 유가권이 수십년 연마한 끝에 도달한 어용풍(御用風)을 몰아붙이고 있다.

진가권이 내공을 얻기까지는 두 단계의 해탈이 있었다. 직장을 던져 버리고 자기가 속해 있던 진영을 뛰쳐나왔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논객무림(論客武林)의 세계에서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논리보다는 정리가 더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진영을 벗어난다는 것은 거의 종교적 파문급의 고독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직장도 그만둬 버렸다. 고려 후기 송광사의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종파적 갈등과 대립을 벗어날 때 한 말이 ‘학무상사(學無常師) 유도지종(唯道之從)’이다. 배움에는 정해진 스승(종파)이 있는 게 아니고 오로지 도(진리)만 추종하겠다는 선언이다. 진가권의 진영 이탈과 직장 사표는 ‘탈번낭인’의 냄새가 난다. 유가권도 그 출신 배경은 만만치 않다. 임진왜란 때의 명재상인 서애 유성룡의 13대 후손이다. 서애는 바로 스테디셀러인 ‘징비록’의 저자 아닌가. 더군다나 서애 대감의 후손들인 하회 유씨들은 17세기 초반부터 수백년간 전개된 병호시비(屛虎是非)를 거치면서 수많은 논객을 배출한 집안이다. 서애 후손들은 병산서원의 병파(屛派)였고, 내앞 김씨들은 호계서원(虎溪書院)을 근거지로 한 호파(虎派)였다. 나는 그동안 안동을 출입하면서 이 두 집안의 뛰어난 논객들에 대한 일화를 많이 들었다. 이러한 집안 내력으로부터 격세유전(隔世遺傳)된 DNA가 유가권에 깔려 있다고 본다. 그러나 조국 사태 이후로 유가권은 진가권에 밀리고 있는 형국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