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고양 오리온과 창원 LG의 경기가 열린 9일 고양체육관. 경기 시작 전 장내 아나운서가 선수 이름을 호명하자 1층 관중석을 메운 팬들이 코트에 나서는 선수들을 향해 환호하기 시작했다.

홈팀 오리온이 아닌, 원정팀 LG선수들의 입장이었다. 아나운서는 차분한 목소리로 선수 이름을 차례차례 불렀지만, 수백 명의 팬이 외치는 함성이 체육관에 울려 퍼졌다. 조명과 음악을 총동원하는 홈팀 선수 소개 못지않은 열기였다. 다른 팀 경기에선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현주엽(가운데) LG 감독이 9일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오리온과의 원정 경기에서 작전 타임을 부른 뒤 강병현(오른쪽)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이들은 경기 때도 LG 선수들이 득점할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노란색 LG 팻말을 흔들었다. 경기 중간중간 "LG 파이팅!"을 외치거나 자유투에 나선 오리온 선수에게 야유를 보낼 때는 마치 홈팀 응원단 같은 분위기를 냈다.

3년 전부터 LG 응원을 다녔다는 이나래(34)씨는 "이번 시즌에 LG 원정 팬이 확 늘어 깜짝 놀랐다"며 "주위에서도 LG 선수들 이름을 대며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원정 팬의 열렬한 응원을 등에 업은 LG는 오리온을 76대64로 꺾고 단독 9위로 올라섰다. 홈팀 오리온이 이날 패배로 최하위가 됐지만, 경기 후 방방 뛰며 승리의 기쁨을 나누는 LG 팬 때문에 홈팀이 이긴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LG는 올 시즌 KBL(한국농구연맹) '전국구 구단'으로 떠올랐다. 현주엽 감독과 선수들이 개막 전 KBS 예능 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전국에 팬이 생겼다.

KBL은 원정팀을 응원하러 온 관중 수를 따로 집계하진 않지만, LG 경기의 관중 집계를 보면 그 열풍을 가늠할 수 있다. 9일 기준으로 홈 관중은 지난 시즌에 비해 소폭 줄어든 반면(3995→3771명), 원정 관중은 50% 가까이 늘어났다(2688→3898명). 물론 원정 경기 관중 증가엔 상대 홈팬도 포함돼 있다. 올 시즌 남자 프로농구 전체 한 경기 평균 관중은 3283명이다.

이런 인기의 중심엔 단연 현주엽 감독이 있다. 그는 예능에서 마카롱 '먹방' 등으로 인기를 끌어 전성기 못지않은 팬을 끌어모았다. 함께 출연한 LG 선수들도 덩달아 인기를 끌었다. 오는 19일 열리는 KBL 올스타전에는 LG선수가 4명(김시래, 김동량, 정희재, 캐디 라렌)으로 10개 팀 중 가장 많다.

그렇다 보니 최근 프로농구판이 시끌시끌했던 순간에는 LG가 빠지지 않는다. 김종규(DB)의 '플로핑(할리우드 액션)', 최준용(SK)의 '도발' 논란 모두 상대팀이 LG였다. 농구 팬 사이에서 '당나귀 효과'란 말이 나올 정도다.

자신과 팀이 인기몰이하고 있지만, 현주엽 감독이 마냥 웃고만 있을 처지는 아니다. 지난 시즌 3위였던 LG는 힘겨운 탈꼴찌 경쟁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