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保釋)으로 풀려난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미쓰비시 회장의 무단 출국으로 국제적 망신을 당한 일본 정부가 반격에 나섰다. 도쿄지검과 경시청은 도쿄, 오사카 지역의 방범 카메라 수백 개를 뒤져 곤의 탈출 경로를 분(分) 단위로 재구성, 무단 출국의 불법성을 강조했다.

일본 검경 수사에 따르면, 곤은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2시 30분쯤 도쿄 미나토(港)구의 자택을 혼자서 나섰다. 마스크를 끼고 모자를 푹 눌러써서 일반인들이 쉽게 알아볼 수 없었다. 그가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자택에서 약 1㎞ 떨어진 롯폰기의 고급 호텔. 그는 이곳에서 탈출을 돕기로 계약한 미국인 두 명을 '접선'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들이 미국의 특수 부대 '그린베레' 출신이라고 보도했다.

곤을 포함한 세 명은 택시를 타고 도쿄 시나가와(品川)역으로 향했다. 4시 30분쯤 오사카행 신칸센에 올라탔다. 이들을 태운 신칸센 열차가 신(新)오사카역에 도착한 시각은 7시 30분. 여기서 택시를 타고 오사카 간사이(關西) 국제공항 인근 호텔로 갔다. 이 호텔은 그를 도운 미국인 두 명이 미리 예약해 둔 것으로 알려졌다.

곤은 이때부터 방범 카메라에서 사라졌다. 일본 수사 당국이 확보한 방범 카메라에는 곤의 공모자들이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검은 상자 두 개를 호텔에서 간사이 공항으로 옮기는 장면밖에 없었다. 곤이 이때부터 상자에 들어가 있었다는 추정이 나온다.

미국인들은 간사이 공항에서 정식으로 출국 심사를 받은 후, 터키 항공에서 4억원에 빌린 자가용 제트기에 탔다. 곤이 숨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 상자는 엑스레이 검사대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검사에서 면제됐다. 간사이 공항 세관원들이 그의 불법 출국에 관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날 저녁 11시쯤 곤을 태운 자가용 제트기는 터키 이스탄불로 날기 시작했다. 이스탄불까지 비행하는 동안에도 곤이 상자 안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곤이 영화 같은 방법으로 일본을 '탈출'한 데 대해 일본 수사 당국도 '미션 임파서블' 등의 추적 영화에 나오는 방식으로 그의 탈출 경로 전모를 파악했다. 그가 간사이 공항에 이르기까지 찍힌 방범 카메라를 일일이 뒤져 마치 점과 점을 이어서 선을 만드는 방식으로 행적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시나가와역과 신오사카역에 설치된 방범 카메라도 전부 조사해서 그가 신칸센에 탑승했음을 확인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수사 당국이 "방범 카메라를 잇는 '릴레이 방식'으로 그를 추적했다"고 전했다.

일본 수사 당국은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곤의 주택을 수색해 압수한 자료를 분석하고 그의 휴대폰 통화 기록도 파악해 퍼즐을 맞추듯 수사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 언론은 곤의 탈출을 돕는 데 수개월 전부터 10~15명으로 구성된 다국적팀이 동원됐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곤의 탈출 준비를 위해 일본을 20번 이상 방문해 일본 내 공항 10여 곳을 답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검경이 수사 결과를 일본 언론을 통해 낱낱이 공개한 것은 오는 8일 곤의 기자회견에 선제 대응하기 위한 측면이 있다. "곤이 치밀한 계획 아래 불법 출국한 것은 명백한 범죄행위"라는 것을 분명히 하며 세계를 상대로 여론전에 나섰다고 할 수 있다. 도쿄지검은 7일 곤의 아내인 캐럴에 대해서도 지난해 4월 곤의 특별배임 사건 관련 증인 신문 때 위증한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고 밝혔다.

도쿄법원이 이날 그가 낸 보석금 15억엔(약 162억원) 몰수를 확정한 것도 같은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곤이 과연 당당하다면 보석금 15억엔을 포기하고 달아났겠느냐"는 여론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몰수된 보석금은 일본 사법 역사상 최고액이다.

반면 곤은 이날 공개된 미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일본 검찰에 체포된 것에 대해 "닛산 회장에서 (자신을) 실각시키려는 사내 쿠데타였다"며 "이를 뒷받침하는 실질적 증거가 있다. 8일 기자회견에서 (관련인들의) 구체적인 이름을 밝힐 것이며, 여기에는 일본 정부 관계자들도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