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청와대 지시를 받아 검사 160여명에 대한 세평(世評) 수집 작업을 벌인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경찰의 세평 보고서'가 관가(官街)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경찰이 검증 대상자 주변을 샅샅이 훑어 만드는 이 보고서엔 음주 습관이나 이성(異性) 문제 등 민감한 개인 정보들도 담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주 청와대 지시를 받은 경찰은 본청(本廳)과 18개 지방경찰청 정보경찰을 총동원해 검사들을 상대로 한 검증 작업을 벌였다. 정보경찰은 자체 지침에 따라 검증 대상자와 직접 접촉하지는 않는다. 대신 경찰은 검증 대상 검사의 사법시험 동기·선후배, 과거 상사나 부하 등을 광범위하게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검찰청 인근 변호사 사무실도 드나들며 각종 소문과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보경찰은 "자신에 대한 세평 조회가 이뤄진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잘 좀 써달라'고 먼저 전화해 오는 검사들도 있었다"고 했다.
경찰이 쓰는 인사 검증 보고서에는 인사·징계 기록은 물론이고 ▲주변 동료와의 관계 ▲의사소통 원활 정도 ▲국정 철학 이해도 ▲대상자를 둘러싼 각종 일화 등이 담긴다. 검증 담당 경찰들은 "부하·상사 등 주변 사람 몇 명 만나고, 전화 5~6통 돌리면 그 사람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 있다"고 장담한다. 대학교수가 차관 후보가 됐다면, 그 제자와 동료 교수들을 만나 해당 교수에 대한 일화를 듣는다. '수업 뒤 항상 제자들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술을 강권한다' 등의 내용이 모인다. "얌전한 줄 알았던 A 차관이 사실은 노래방만 가면 가수 뺨칠 정도로 잘 논다" "B 국장은 저녁에 소주 마시는 걸로 부하 직원들과 소통하려 해 직원들이 불만" 등의 내용도 경찰 보고서에 담긴다.
보고서 '기타 특이사항' 항목엔 대상자의 이성 관계, 과도한 음주 여부 등도 적힌다고 한다. 검증 대상자 주변에서 "C 국장은 술만 마시면 3차로 꼭 유흥업소에 간다"는 이야기가 반복해서 나온다면, '유흥업소 출입이 잦음. 업무 수행 차질 우려'라고 평가하는 식이다.
청와대는 작년 말 경찰에 "인사 검증이 부실하다"고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경찰의 인사 검증 능력이 (더는 봐주기 어려운) 임계치에 왔다'는 취지였다. 그럼에도 청와대의 경찰에 대한 인사 검증 의존도는 커지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보 기능이 폐지되면서, 활용 가능한 조직이 경찰뿐이기 때문이다. 경찰 내부에선 '뒤 캐기' 업무에 대한 불만도 나온다. 한 정보경찰은 "우리의 임무는 범죄 정보를 캐는 것인데, 업무 외의 일을 시켜놓고 못한다고 역정까지 내는 것은 적반하장"이라며 "청와대가 얼마나 주먹구구로 돌아가는지 안 봐도 뻔하다"고 했다.
이런 활동이 경찰 권한 밖 업무라는 지적도 있다. 경찰은 "청와대가 법에 따라 경찰에 '업무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고, 대상자들에게 사전 동의도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법무법인 '민주'의 서정욱 변호사는 "필요한 절차를 밟았다는 것이 그 행위 자체의 정당성을 담보해주지는 않는다"며 "말이 '세평 조회'이지, 사실상 청와대가 경찰을 동원해 헌법상 기관인 검사 등 공직자를 사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