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새해 업무 첫날이 밝자마자 추미애의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한 대통령은 '권력기관이 국민 신뢰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법적·제도적 개혁을 멈추지 않겠다'며, 이를 위해 자신은 '대통령의 헌법에 따른 권한을 다하겠다'고 선언했다. 앞의 말은 완전 반어법 구사 연습 같아서 해석이 필요하지만 사실 우리 국민 중에 해석 못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권력기관이 국민 신뢰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개혁을 하겠다 함은 검찰이 완전 허수아비가 될 때까지 패고 조이고 목 자르겠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을 다하겠다'는 말은 앞으로도 계속 청문 보고서 없는(즉 국회가 부적임자라고 판정한) 인사를 국무위원으로 임명하고, 목숨 걸고 자유를 찾아 남하한 북한 주민을 흉악범으로 몰아 북한으로 돌려보내 잔인하게 사형당하게 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공수처법' 등 편법 통과와 '법원 조직법' 개정을 통해 삼권분립을 무너뜨려 삼권을 모두 장악하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대통령에게 이런 짓을 허용한 헌법 조항이 있단 말인가? 이런 행위들은 오히려 헌법이 대통령의 재임 중에도 기소 이유가 된다고 한 내란·외환죄에 해당하는 것 아닌가?

그러고 보니 문 대통령이 자신의 '헌법적 권리'라고 행하는 것은 대부분 위헌적 월권이다. 안보를 허물어 나라와 국민을 북한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시키고, 잘못된 경제 정책과 기업 옥죄기로 국가 경제를 병들게 해서 국민의 생계를 빼앗고, 자사고 폐지 등 사악한 교육 정책으로 다음 세대를 무식, 무능력한 세대로 만들고, 동맹국에는 적대감을 배양하고 위협적인 대국에는 굴욕 외교로 경멸을 자초한다. 버닝썬 수사 지시 등 대통령이 개입하지 말아야 할 사안에는 개입하고 인헌고 사태 등 대통령이 개입해야 할 사안은 냉혹하게 외면한다.

도대체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언급하고 주장한다는 것이 얼마나 치사하고 부끄러운 일인가? 그런데 그 권한이 터무니없는 월권, 정상적 대통령이라면 생각해서는 안 되는 권리이니 국민은 계속 휴일을 반납하고 국민 저항권을 발동하느라 고난이 막심하다.

올해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대한민국의 존망이 달렸는데, 하늘에는 도무지 서기(瑞氣)가 비치지 않고 먹구름만 가득하다. 고려 말에 목은 이색 선생은 왕조의 황혼을 이렇게 한탄했다.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우리도 이 모진 겨울을 이기고 매화를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