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윤 간호사

사경을 헤매던 환자가 자다가 눈을 부릅뜨고 내뱉었던 한마디를 기억한다.

"내가 죽어 있는 거야, 살아 있는 거야?"

나는 대학병원 중환자실 간호사다. 내가 일터에서 마주하는 환자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오늘도 힘겹게 숨 쉬고 있다. 내 일에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신규 간호사라 서툴고 처음인 게 많다고 하소연할 수도 없다. 나는 경계 위에 놓인 환자들이 삶 쪽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이들의 몸이 내는 신호에 일희일비하며 중환자들을 관찰하고 돌본다.

처음 중환자실 간호사가 되었을 때, 나는 이 일의 중압감에 자주 무너졌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죽음은 신의 영역인지라 놓쳐버리는 목숨이 많았다. 종일 돌보던 환자가 죽어나간 침대에 새 환자가 전과 같은 신음소리를 내며 같은 고통의 표정을 짓고 누워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면서도 차차 죽음에 무뎌져가는 내 모습에 스스로 '괴물'이라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일하면서 나는 내가 나이팅게일도, 백의의 천사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저 사람이었다. 사람이라서, 여전히 죽음을 마주하는 일은 힘겨웠고, 때로는 의사의 부당한 지시에 고뇌했으며 간호사 사회가 왜 '여자 군대'로 불려야 하는지, 왜 신규 간호사에게 '태움'이란 악습이 물려지는지, 나는 끝없이 묻고 말하고 싶었다.

‘무너지지 말고 무뎌지지도 말고’(문학동네)는 불완전하고 불안했던 20대 사회 초년생인 내가 중환자실에서 삶과 죽음을 배워가는 이야기다. 병원 내 부당한 관습들을 그러려니 넘기지 않고 입바르게 짚어내고 싸우기도 했던 어느 ‘건방진 간호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새해에는 나처럼 서툴고 모나고 불완전한 사람들 모두가 부디 무너지지 않기를, 또 무뎌지지도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