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때부터 시작… 10년 경력의 흔적 - 굳은살이 박인 서채현의 손. 암벽 등반 10년 경력의 흔적이 손발에 고스란히 새겨졌다.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성인 무대에 출전할 수 있는 만 15세가 된 지난해, 서채현(17·신정여상·노스페이스)은 기다렸다는 듯 메달을 휩쓸었다. 처음 출전한 IFSC 여자 리드 월드컵 1차 대회에서 은메달로 시동을 건 뒤, 이후 4개 대회에서 금메달을 독식했다. 작년 6차례 월드컵에서 금 4·은 1·동 1개를 따내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서채현이 나타나기 전까지 여자부 리드 종목 선두를 달리던 최강자 얀야 간브렛(21·슬로베니아)을 제치고 랭킹 1위로 2019년을 마감했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운영하는 매체 '올림픽 채널'은 "도쿄올림픽에서 간브렛을 위협할 만한 가장 강력한 적수는 '10대 센세이션' 서채현"이라고 내다봤다.

12월 31일, 방학을 맞은 열일곱 고등학생은 훈련장에서 10㎏ 덤벨을 하나씩 양손에 들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있었다. 서채현은 "이번 겨울방학에는 도쿄올림픽 예선전도 준비해야 하고, 2월 스페인 가족 여행에서 고난도 자연 암벽도 정복해야 해서 쉴 틈 없이 바쁘다"고 했다.

◇일곱 살에 빠진 '등반의 맛'

서채현은 기억도 못 할 만큼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 등에 업혀 산에 다녔다. 아버지인 아이스클라이밍 국가대표 서종국(47)씨와 역시 클라이머인 어머니 전소영(47)씨는 등산 동호회에서 강사와 수강생으로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어린 딸을 혼자 두고 산에 갈 수 없어, 흙이라도 만지고 놀라며 세 살 때부터 데리고 갔던 산이 그 딸의 인생이 됐다. 서채현은 일곱 살 때부터 산과 실내 암장에서 놀이처럼 클라이밍을 익혔다. 그의 손가락 발가락엔 마디마다 둥그런 굳은살이 속속 박여 있었다. 학교에선 마카롱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교실 뒤에서 웃긴 영상을 찍고 노는 해맑은 고등학생이지만, 스포츠클라이밍 세계에선 경력 10년이 넘은 베테랑으로 통한다.

지난 12월 31일 암장에서 맨몸으로 인공 암벽을 오르며 미소 짓는 서채현. 그는 성인 무대에 처음 출전한 지난해, 리드 월드컵 여자부 4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세계 클라이밍계는 이 무서운 10대를 ‘센세이션’이라고 부른다. 암벽 등반이 마냥 좋아서 한다는 서채현은 오는 4월 2020 도쿄올림픽 출전권에 도전한다.

"그냥 재밌어요."

서채현에게 돌풍을 일으킨 비결을 물으니, 칭찬이 쑥스러운 듯 이렇게 답했다. 일주일에 4일, 10시간씩 이어지는 훈련을 버틸 수 있는 것도 '클라이밍이 좋아서'다. 지난해 성인 무대에 출전하기 전, '잘 못해도 실망하지 마라'는 어머니의 말에 태연스럽게 "괜찮아, 그럼 바위(자연 암벽 등반) 하러 가면 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클라이밍의 매력은 '몰입의 즐거움'이다. 서채현은 "경기 중엔 응원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남다른 집중력 덕분인지 공부도 곧잘 한다. 고등학교에 수석 입학한 서채현은, 작년 국제 대회를 다니느라 학과 일정의 4분의 1을 빠졌는데도 학급 1등을 놓치지 않았다.

◇"한 장 남은 올림픽 티켓, 꼭 따야죠"

클라이밍이 그저 좋아서 한다는 서채현도, 2020 도쿄올림픽에는 욕심이 난다. 이번 대회에서 처음 정식 종목이 된 만큼, 올림픽 첫 출전과 첫 메달의 영광을 모두 노릴 수 있어서다. 그러려면 4월 27일부터 열리는 아시아 챔피언십에서 한 장 배정된 올림픽 티켓을 따야 한다. 아시아 선수들뿐 아니라 김자인(32)과 사솔(26) 등 대표팀 선배도 이겨야 한다.

도쿄올림픽에서는 리드(높이 대결), 스피드(속도 대결), 볼더링(과제 수행) 종목 성적을 종합해 순위를 결정한다. 서채현은 리드와 볼더링에서 빼어난 활약을 보여준 데 반해 스피드는 아직 메달이 없다. 순간적인 힘을 발휘해야 하는 스피드 종목은 근력이 붙는 20대 초반 선수들이 유리하다. 그는 "스피드를 끌어올리려고 웨이트 트레이닝에 신경 쓰고 있다"면서도 "좋아하고 잘하는 리드와 볼더링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림픽 무대에선 콤바인(리드+스피드+볼더링) 세계 1위인 얀야가 경계 1호, 일본의 동갑내기 클라이머 모리 아이(17)도 지기 싫은 경쟁자다.

"제가 긴장은 잘 안 해도 승부욕은 꽤 강하거든요. 재밌게, 하지만 정말 열심히 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