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9일 서울시는 매우 이례적인 발표를 했다. 이튿날인 10일 착수하기로 했던 서울 용산구 한남2고가차도 철거 공사를 취소한다는 발표였다. 시는 이보다 불과 닷새 전인 7월 4일 "사업비 118억원을 들여 한남고가를 철거하고, 한남1고가 남단~한남대교 남단 2㎞ 구간에 중앙버스전용차로를 설치하는 공사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시가 추진하는 100억대 사업이 하루 전 취소되는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웠다. 한남2고가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보행친화도시' 정책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구로·선유고가 등 7곳과 함께 철거할 예정이었다. 시는 당시 착공 발표와 함께 우회도로를 표시한 지도를 배포하고 곳곳에 공사를 알리는 현수막을 붙였다. 그러나 불과 며칠 사이에 결정이 번복되며 돌연 연기를 발표한 것이다. 당시 시 관계자는 "더 철저한 교통 대책을 마련한 후 재추진하겠다"고 했다.

지난 2018년 7월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대교 인근 육교에 '한남2고가 철거공사입니다'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서울시는 전날인 7월 10일 철거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철저한 대책 마련 등을 이유로 착공 하루 전인 7월 9일 공사 연기를 발표했다.

30일 본지 취재 결과, 문제의 한남2고가는 결국 철거하지 않기로 결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시가 교통 영향 등을 다시 분석해보니 "한남고가를 철거하면 일대 교통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마비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시의 오락가락 행정에 시민 혼란이 가중되고 세금만 낭비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시의 2차 분석에 따르면 한남고가 철거 시 차량 시속이 최대 53%까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2016년 1차 분석 때는 최대 29%만 감속할 것으로 예상됐다. 시 관계자는 "1차 분석 때는 시속 감소 폭이 30% 이내면 철거가 무난하다고 봤다"며 "차량 흐름을 중구 남산1호 터널까지 확대해서 분석한 결과, 심각한 연쇄 교통마비를 부를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또 정체가 심할 경우 차량 대기 행렬이 기존보다 1㎞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1차와 2차 분석 결과가 현격히 다른 이유에 대해 시 관계자는 "교통량을 측정하는 날의 날씨, 시간, 측정 구간 등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다"며 "2차 분석 때는 횡단보도 위치 등 모든 변수를 살폈다"고 말했다.

시에서는 1차 분석 때 철저한 검토가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시 관계자는 "2016년 고가차도 철거 수립 기본계획 때는 서울에 있는 모든 고가를 분석하다 보니 정밀한 분석이 어려웠다"며 "시 차원에서 고가 철거가 포함된 종합 계획을 발표한 이상 실무자 선에서는 철거를 추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또 "공사 하루 전날 취소 발표는 시로서는 매우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한남2고가 철거가 번복되는 과정에서 수억원의 혈세가 낭비됐다. 2차 교통 분석 용역에 1억2100만원이 들었다. 철거를 앞두고 공사 안내판을 제작하고 현수막을 붙이는 데 수백만원이 들었다. 고가 철거 준비 공사에는 1억5000만원이 투입됐다. 철거 잔해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한남오거리 인근 고가차도에 공중비계를 설치했고 이를 고정하기 위해 교각에는 볼트 3000개를 심었다. 내년에 볼트를 제거하고 구멍을 메우는 공사에 또 사업비가 들어간다. '고가 철거(구로고가 포함) 및 중앙버스전용차선 실시설계'에 들인 비용도 5억원 이상이다.

시는 당분간 고가를 계속 쓰기 위해 내년 3월부터 유지 보수 공사를 하기로 했다. 예산 20억원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위해 3월 이후 3개월간 일부 차선을 통제한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한남2고가는 경부고속도로부터 시작해 서울 도심까지 연결해주는 도로로, 철거했을 때 서울 전체 도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며 "섣불리 철거를 발표하기 전에 면밀한 검토를 하지 않아 결국 쓰지 않아도 됐을 예산만 낭비했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관행대로 발표에 따라 철거했으면 오히려 더 많은 세금을 낭비했을 것"이라며 "이제라도 바로잡아서 다행"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