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두 개뿐인데, 트로피는 너무 많았다. 2019시즌 마지막 날 고진영(24)이 그간 수집한 트로피들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할 때 캐디와 매니저, 아버지까지 동원됐다. 여자 골프 세계 랭킹 1위 고진영은 말 그대로 2019년을 평정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상금왕(277만3894달러·약 33억원), 올해의 선수상, 최저타수상(69.062타)을 한 시즌 석권한 최초 한국 선수가 됐다. 최다승(4승)에 안니카 메이저 어워드(메이저 2승)까지 싹쓸이했다. 그의 올해 평균 타수는 역대 LPGA 투어에서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68.697타) 다음으로 낮았다.
게다가 무려 114홀 연속 '노 보기(no bogey)' 행진을 펼쳤다. 타이거 우즈(미국)가 최전성기 시절인 2000년 세웠던 연속 110홀 기록을 넘어섰다. 사람이 아니라 AI(인공지능)라는 소문이 났다. 골프닷컴은 "고진영의 탁월성을 계량화할 방법은 많지만, 그의 다른 모든 압도적 성과를 넘어서는 단 하나의 숫자는 114"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에도 이미 탁월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데뷔 이래 다른 스타들에게 가려졌던 그는 2017년 한국에서 열린 LPGA 투어 하나은행 챔피언십 우승으로 미국 진출 기회를 따냈다. 실패하면 어쩌나 고민하다가 결국 넓은 무대를 택했고, 2018년 개막전 호주여자오픈에서 덜컥 우승했다. LPGA 투어 데뷔전 우승은 사상 두 번째였고 67년 만이었다. 신인상도 받았다. 만족하지 않았다. 작년 시즌 최종전인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을 마치자마자 스스로 가장 부족하다고 여겼던 쇼트게임 특훈에 돌입했다. 전(前) 세계 랭킹 1위 리디아 고(뉴질랜드)와 에리야 쭈타누깐(태국)을 가르쳤던 가렛 래플루스키에게 그린 주변에서 샷을 높이 띄우는 법, 스핀 거는 법 등 다양한 어프로치샷을 배웠다. 래플루스키는 "처음엔 고진영이 '전혀 못 따라가겠다'고 하더니 곧 모든 종류의 샷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며 "타고난 소질을 발휘해 이젠 언제 어떤 상황에서 각각의 샷을 해야 하는지 전부 터득했다"고 전했다.
올해 그는 태풍이 와도 흔들릴 것 같지 않은 표정으로 LPGA 투어에서 네 차례 우승했고 KLPGA 투어 메이저 우승도 추가했다. 넬리 코르다(미국)는 "언제나 그의 쇼트게임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본다"고 했다. 렉시 톰프슨(미국)은 "같이 경기를 많이 해봤는데 샷을 정말 똑바로 보낸다"고 했다. 고진영은 아주 어려운 것도 쉬워 보이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냥 치는 거 같은데 대기록을 세우고 있다. 크리스티나 김(미국)은 "고진영과 같이 경기하면 '뭐야, 별거 없잖아. 그냥 괜찮게 치네'라는 생각이 든다. 정신 차려 보면 11개 홀에서 7언더파를 치고 있다"고 했다.
소렌스탐은 고진영에 대해 "약점이 없고 심리적으로 불안해하지 않는다. 압박감이 큰 상황에서도 간결한 자기 스윙을 그대로 유지한다. 골프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다"라고 했다. 그런데도 고진영은 "아직도 내 눈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다"며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라고 한다. 올해 차지한 빛나는 트로피들을 다 잊어버리고 "내년엔 도쿄올림픽 금메달까지 목에 걸고 싶다"고 한다. 만족을 모르는, 고진영은 여전히 배가 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