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의 창시자 에드먼드 버크

제시 노먼 지음|홍지수 옮김
살림|466쪽|2만3000원

18세기 영국 하원 의원을 지낸 버크(1729~1797)는 빛나는 보수주의 정치철학을 후대에 남겼지만 동시에 많은 정치철학자로부터 일관성을 결여했다는 비난을 샀다. 그는 아메리카 식민지에 대한 영국의 억압을 비판했으며, 왕실과 행정권력의 자의적 행사에 반대했기 때문에 개혁적 인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동시에 구체제를 허문 프랑스혁명 주동자들을 이상주의를 가장한 사기꾼에 불과하다고 비난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였다.

영국 하원 의원인 저자는 개별 사안에 대한 버크의 주장이 아니라 그가 평생 지킨 원칙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버크는 정치의 핵심이 사회질서 유지에 있다고 봤다. 이 질서를 허무는 세력은 기존의 왕권이든 새로이 부상하는 권력이든 모두 비판했다. 프랑스혁명 세력이 불의와 권력남용의 혼돈 속을 헤매다가 군인 통치자를 불러낼 것이란 예언은 적중했다.

버크는 인간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는 계몽주의 인간관을 믿지 않았고, 본능과 감정에 의해 축적된 공동체의 전통과 지혜와 경험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는 질서 속에서만 누릴 수 있다는 신념을 지녔다는 점에서 그는 보수주의자다. 사회적 지위를 추구하고 세상에서 인정받기를 갈망했지만 그 방법은 정당해야 한다고 믿었고, 공직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행위를 불명예로 여긴 참보수였다. 이 원칙을 지키느라 죽을 때까지 빚에 시달렸다.

'정치적 계산에 몰두하다가 상식이 누락된다'는 경고는, 의석만 차지할 수 있다면 민주적 원칙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선거법을 난도질하는 지금 이 땅의 정치인들을 두고 하는 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