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광화문광장의 고질적 병폐로 꼽혀온 집회·시위 문제 해결에 나선다. 서울시는 지난 9월 광화문광장 재조성 공사를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석 달째 재조성 프로젝트는 숨 고르기 중이다. 하지만 모든 절차가 중단된 건 아니다. 그사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한 시 관계자들은 주민들, 건축·도시 전문가들과 15차례 만나 의견을 취합했다.

새로 태어날 광화문광장에는 시민을 위한 야외 영화 상영 공간도 들어설 예정이다. 위의 모습은 예상도. 서울시는 광장의 집회·시위 공간을 줄이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대폭 늘릴 방침이다.

그 결과 서울 시민들은 내년에는 한결 달라진 광화문광장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우선 내년 3월부터 매달 첫째 주 월요일에 '비움의 날'이 운영된다. '비움의 날'에는 광화문광장 북측에서 어떤 행사도 열지 않는다. 반응이 좋으면 횟수도 늘리고 실시 지역도 광화문광장 전역으로 넓힐 방침이다. 행사도 대폭 축소한다. 국가기념일 행사 등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공익 행사도 최대한 억제한다.

시가 이처럼 나선 것은 "집회와 시위 때문에 광화문광장에 가고 싶지 않다"는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다. 서울시는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의 개정도 추진한다. 조만간 집시법 개선 대책 태스크포스를 꾸린다. 헌법과 집시법에 정통한 법조계 인사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한다. 태스크포스 멤버들은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주민들과 나들이객들의 고통을 해결할 개정안을 마련해 정부와 국회에 건의할 계획이다. 실질적인 소음과 공해 해결책을 수립하고자 소음 및 매연 실태 조사도 진행하기로 했다.

당초 발표됐던 설계안도 집회·시위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구조를 수정한다. 광장 재조성으로 확보되는 세종문화회관 쪽 보행자 공간에 바닥 분수, 놀이터, 정원, 벤치와 테이블 등을 놓는다. 푸드트럭, 판매대, 전시 공간, 야외 공연장 등도 들어선다. 시민들은 푸드트럭에서 산 간편 음식을 먹으며 미니 콘서트를 즐길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건축물의 외벽을 활용해 화려하고 역동적인 이미지와 영상을 보여주는 미디어 파사드도 추진한다. 서울시는 미디어 파사드 상연이 가능하도록 현대해상빌딩·교보빌딩·KT빌딩·세종문화회관 측과 협의할 방침이다.

집회 때마다 교통 불편을 겪어온 종로구 주민들을 위해 우회 버스 노선 2개가 내년 3월에 신설된다. 이 중 8002번 버스(자하문로~경복궁역~사직로~자하문로)는 광화문광장과 주변에서 집회·시위가 열릴 때만 운행된다. 시는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해도 버스가 정상 속도로 달릴 수 있도록 서울경찰청과 협의해 세부적인 우회 노선을 마련할 계획이다. 주중에도 운영되는 8003번 버스(평창동주민센터~북악파크~평창동주민센터)도 신설된다.

서울시는 주민 의견 중 타당성이 있는 사안을 실제로 반영할 계획이다. 우선 광화문광장 주변인 삼청동·체부동 일대 약 1.3㎞ 구간의 이면도로와 사직공원~정부서울청사 별관 사이 475m 구간의 머리 위 전선들을 땅속으로 묻는 지중화 작업이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주민 요청 중에는 청운효자동 한옥보전구역 내 건물 고도 규제 완화 등도 포함됐다. 서울시는 이 사안도 전향적으로 검토 중이다. 재조성 프로젝트를 정비하면서 각종 규제에 묶여 있던 종로구 주민들의 생활 불편이 해소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많은 의견을 경청하면서 광화문광장의 공원적 요소에 대한 주민 요구도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여러분의 말씀을 가능한 한 반영해 100년, 1000년을 가는 광장을 함께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