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 취업 준비생, 비정규직 아니면 백수…. 올해 한국 영화에 비친 청춘의 모습이다. 주인공 대부분이 절망적이고 비관적으로 현실을 인식한다는 것도 공통점. 연말을 맞아 올해 우리나라 영화 속 청춘들을 돌아봤다.

청춘이 겪는 절망의 풍경을 그려낸 영화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버티고' '아워 바디' '애틀랜틱스' '10년'.

취업난은 올해 한국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재였다. 지난달 고용 동향에 따르면 청년 체감 실업률은 20%를 넘었다. 청년 다섯 중 하나가 실업자인 현실을 영화도 반영하는 것. 대표적 작품이 올해 940만 관객을 모은 '엑시트'(감독 이상근)다. 취업에 계속 실패하는 만년 취준생 용남(조정석)이 웨딩홀에서 일하는 의주(윤아)와 우연히 만나면서 함께 재난을 헤쳐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청춘들이 겪는 답답하고 짠 내 나는 현실을 코믹하게 보여준다. 제작사 외유내강 조성민 부사장은 "청년들의 능력을 스펙이나 시험으로만 판단하는 사회에서 실패자인 주인공이 영웅이 될 때 관객이 희열을 느낄 것이라고 봤다"고 했다.

지난 10월 개봉한 독립영화 '오늘, 우리'(감독 조은지·부은주·송예진·곽은미)도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통과해야 하는 젊은이를 그린다. 주인공 수진(조민경)은 취직에 성공하고 기뻐하지만 이내 문자메시지로 합격 취소 통보를 받는다. 결국 스터디원들에게 나눠준 토익책과 수험서를 일일이 다시 받으러 다닌다. 이를 악물고 필기한 메모지 한 장까지 다시 내놓으라고 닦달하기까지 한다.

여성과 운동이란 소재를 결합해 호평받은 '아워 바디'(감독 한가람)의 시작도 취업난이다. 주인공 자영(최희서)은 8년 차 고시생. 번번이 시험에 떨어지고 지친 그는 시험공부를 때려치우고 달리기에 몰두한다. 청춘의 현실을 재난이라는 은유로 보여준 영화도 있다. '메기'(감독 이옥섭)에선 전국 곳곳에 갑자기 싱크홀 수십 개가 생긴다. 뜻밖의 기이한 풍경으로 젊은이들이 겪는 현실의 비참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외국 감독들도 올해는 청춘들이 겪는 현실과 마주할 미래를 암담하게 그렸다. 지난 10월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날씨의 아이'는 폭우로 물에 잠긴 도쿄에서 지내는 10대 소년·소녀를 그린 작품.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날씨는 조금씩 미쳐가는 세상에 대한 비유"라고 했다. 지난달 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애틀랜틱스'는 세네갈 출신 청춘의 어두운 상황을 다뤘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청년들이 스페인 밀입국을 시도하다 배가 뒤집혀 죽는다. 이들의 혼(魂)에 빙의된 이들은 마을 곳곳에 불을 지른다. 이달 개봉한 옴니버스 영화 '10년'은 일본의 젊은 감독 5명이 10년 후 미래를 상상해서 그렸다. 75세 이상 노인은 안락사당하고, AI는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손시내 영화평론가는 "안전한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청년 세대의 불안이 반영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