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에서 탄핵 소추안이 통과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지난 18일 탄핵안 통과 이후 나온 전국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트럼프는 민주당 대선 예비 후보들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누구랑 싸워도 1~5%포인트 뒤진다. 트럼프 직무 수행 지지율은 44.5%로 올랐지만 한 번도 50%를 넘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미 언론은 내년 11월 3일 그의 재선을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승자 독식'의 선거 방식… 경합 주만 차지하면 돼
그 이유는 전체 유권자 득표수와 관계없이 각 주에서 이긴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을 다 가져가 전체 538석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 중 과반(270석)을 획득하는 후보가 이기는 선거 방식 탓이다. 2016년 대선 때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뉴욕주에서 170만표라는 압도적 표차로 이겼고, 트럼프는 플로리다주에서 11만표 차로 간신히 이겼지만 두 주의 선거인 수는 29석으로 같았다. 트럼프는 전체 득표에선 클린턴에게 250만표(1.6%포인트) 뒤졌지만, 여러 주에서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이기면서 선거인 306석을 얻고 당선됐다. 두 후보는 실제로 157석이 걸린 12개 주에서 한 자릿수 득표율 차로 맞붙었다. 트럼프는 이 중 7개 주에서 이겨 107석을 확보했다. 특히 미시간·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주에선 고작 10만7000표를 더 얻고도 모두 승리해 3개 주 선거인단 46석을 독식했다. 따라서 내년 대선의 1차 관전 포인트는 지난 대선 때 공화·민주당이 각각 여유 있게 이긴 주가 아닌, 이 경합 주들이다. 트럼프가 이 6~7개 주만 지킨다면 민주당이 기존 공화당 텃밭을 뺏어오지 않는 한 게임은 끝난 것이다.
트럼프는 현재 이 경합 주들에서 민주당 후보와의 가상 대결 전적(戰績)이 나쁘지 않다. 지난 10월 말 뉴욕타임스(NYT)가 90% 이상의 투표 의사를 밝힌 유권자 조사에서 트럼프는 샌더스, 워런은 2~4%포인트 앞섰고, 바이든에겐 1~2%포인트 뒤졌다. 모두 오차 범위 안이었다. 워싱턴포스트의 11월 위스콘신 조사에선 트럼프가 바이든을 처음으로 47%대 44%로 이겼다.
◇50년래 최저 실업률 등 호전된 경제지표가 든든한 원군
트럼프가 유리한 이유는 경제다. 미국의 11월 실업률은 3.5%로 지난 50년래 최저다. 인플레이션도 2.1%로 낮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휘발유나 주택 가격 등 생활 경제나 주식시장, 실업률 등 어떤 모델로 예측해도 트럼프가 평균 332석의 선거인단을 확보할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의 쇠퇴하는 제조업 지역과 상당히 겹치는 경합 주 유권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백인 노동자층은 전통적인 민주당원이지만 민주당 후보 3인보다 트럼프를 24~26%포인트 차로 더 지지한다. 지역 경기가 트럼프의 약속처럼 살아나지 않아도 '보호주의자 대통령의 관세 조치가 없었으면, 더욱 엉망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짓말, 과대 포장과 같은 트럼프의 도덕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10월 미 프로야구 월드시리즈 때 공화당은 600만 개 일자리 창출·불법이민자 반감(半減), 테러지도자 사살 등을 열거하며 "좋은 사람(a nice guy)은 아니지만, 워싱턴을 바꾸려면 트럼프가 필요하다"는 30초 광고를 냈다. NYT는 트럼프가 전체 유권자 투표에서 최대 5%포인트까지 져도 재선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민주당의 경우, 541억달러 부호인 마이클 블룸버그가 14개 주 동시 예비선거가 치러지는 내년 3월 3일 '수퍼 화요일'을 시작으로 경선에 뛰어들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블룸버그는 3번의 뉴욕시장 선거에서 모두 2억6100만달러(약 3000억원)를 썼고 모두 이겼다. 이번에도 30억~50억달러(약 5조8000억원)를 쓸 것으로 예상된다. 공화당이 경합 주에서 가가호호 방문하며 트럼프 지지를 호소하고 민주당을 탄핵 위기를 조장한 급진적 사회주의 정당으로 공격하는 동안, 민주당은 7월 중순 전당대회 직전까지도 뚜렷한 후보 없이 혼전(混戰)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백인 기독교인 감소 트렌드는 미 공화당의 아킬레스건
하지만 공화당도 장기적으론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있다. 핵심 지지 기반인 백인 기독교인층이 계속 줄어드는 미국 인구 구성의 변화다. 1980년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이 당선됐을 때 백인 기독교인(가톨릭 신자 포함)은 전체 인구의 80%였다. 이후 2008년 54%, 작년 중간선거 때는 41%까지 급감했다. 지난 2016년 대선 당시 인구의 43%였던 이들은 대거 투표에 참여, 전체 투표수의 55%를 차지했다. 백인 기독교인 유권자 구성비를 10여 년 전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트럼프는 전통적인 가치를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백인 기독교인들의 공포에 힘입어 당선됐다.
시간은 공화당 편이 아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2012년 민주당 버락 오바마에게 진 뒤 "히스패닉·아시아계·남태평양 주민·흑인·인도계·여성·젊은 층의 마음을 못 얻으면, '정치적 망명' 위기를 맞는다"는 보고서를 냈다. 미국의 정치 분석가들은 공화당이 의지할 수 있는 백인 기독교인 '타임머신'은 앞으로 두세 차례 대선까지만 유효할 것으로 본다. 미국 공화당이 특정 인종과 종교 위주로 남을 것이냐, 여러 인종에 문을 여는 아이디어를 개발할 것이냐 결정할 여유가 많지 않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