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범여 군소 정당은 23일 현행 지역구(253석)와 비례대표(47석) 의석수를 그대로 유지하는 공직 선거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자신들이 '개혁'이라고 주장했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비례 의석 일부에만 적용키로 했고, 석패율제는 아예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 4월 선거법 개정을 약속한 지 8개월 만에 내린 결정이다. 여권이 내세웠던 사표 방지, 지역주의 완화를 위한 선거법 개정안은 사라지고 1석이라도 더 얻기 위해 꼼수에 무리수, 편법까지 동원한 누더기법이 탄생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유한국당·새로운보수당은 "이른바 '4+1'이 합의한 선거법 수정안은 지난 4월 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한 원안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법안"이라며 "국회법 정신을 완전히 짓밟았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당권파,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등 이른바 '4+1 합의체'는 이날 현행 국회의원 의석수와 동일한 '253석(지역구)+47석(비례대표)'을 그대로 유지하고 비례 47석 중 30석에만 연동률 50%를 적용하는 선거법 개정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아깝게 2위로 떨어진 지역구 후보에게 비례대표를 주는 석패율제는 "대승적으로 포기하겠다"고 했다. 각 당 대표들은 마치 대단한 합의를 한 것처럼 손을 맞잡았다.
그러나 이번에 합의한 선거법은 당초 민주당과 범여 군소 정당들이 만든 원안과는 상당히 다르다. 지난 4월 민주당은 한국당이 반대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 처리를 명분으로 내세워 군소 정당들이 원하는 선거법 개정안에 합의했었다. 당시 원안에는 현행 의석수를 '225석(지역구)+75석(비례대표)'으로 조정하되 비례대표 75석에 연동률 50%를 적용하고, 석패율제 대상 의석으로 6개 권역별 2석씩 총 12석을 지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경우 6석의 정의당이 20석에 가까운 의석수를 얻게 되는 등 군소 정당들이 큰 수혜를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민주당 내부에선 "1당 놓치면 누가 책임질 거냐" "내 지역구 없어지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반발이 거세졌고, 그러자 당 지도부는 다른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연동률 50%를 적용하는 비례 의석수를 75석에서 60석, 50석, 30석까지 차례로 줄였다. 석패율제를 적용받는 의석수도 12석에서 6석까지 줄이더니 급기야 폐지를 주장했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도 현행과 똑같이 유지하기로 하면서 여권 텃밭인 호남 의석수(28석)도 그대로 지키겠다고 했다. 민주당뿐 아니라 호남에 기반을 둔 바른미래당 손학규계·민주평화당·대안신당 등 모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용두사미'가 돼버린 것이다.
정의당 등 범여 군소 정당들은 이 과정에서 "민주당이 뒤늦게 밥그릇 챙기기에 나서면서 선거법이 망가졌다"며 반발했지만 결과적으로 민주당 2중대 역할만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의당과 평화당은 막판까지 석패율제에 집착했지만, 이에 대해 민주당이 심상정, 정동영 대표 등을 거론하며 "중진 재선 보장용"이라고 공격하자 결국 백기를 들었다는 분석이다.
'4+1 협의체'가 2012년 국회선진화법 개정 취지를 완전히 무시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행 국회법은 쟁점 법안 처리엔 재적 5분의 3(177석) 이상이 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범여권은 지난 4월 전체 의석이 아니라 각 위원회에서도 5분의 3을 확보하기만 해도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활용,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렸다. 한국당 관계자는 "국회선진화법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른 것"이라고 했다. 새보수당 하태경 창당준비위원장은 "선거법 개정안은 교섭단체 간 합의가 없었다면 원안 그대로 표결하는 것이 국회법 취지에 맞는다"고 했다.
☞연동률 50%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얻어야 할 의석수에 비해 실제 정당이 지역구에서 획득한 의석이 적을 경우, 비례대표로 이를 보전해주는 제도다. 예컨대, 정당 득표율이 10%라 전체 300석 중 30석을 얻어야 하는 정당이 지역구 선거로 3석을 확보한 경우 27석을 비례대표로 채워준다는 뜻이다. 그러나 같은 경우 연동률을 50%로 제한하면, 30석의 절반인 15석을 지역구 당선자와 비례대표로 채우면 된다.
☞연동률 캡 30석
범여권은 지난 4월 비례대표 의석수를 75석으로 늘리기로 합의했다가 23일 현행과 같은 47석으로 두기로 했다. 또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비례 47석 중 30석에만 적용키로 했다. 비례대표 전체를 연동형으로 두면 지역구 당선자가 많은 거대 정당이 비례 의석을 한 석도 못 얻어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연동률이 적용되는 비례 의석 상한선을 30석으로 묶어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