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前 금융위원장

지금은 지난 한 해 국내외 경제 변화를 반추하고 금융시장 흐름을 짚어 보며 다가오는 새해를 조망하는 시기다. 국가 경제의 연간 실적을 보여주는 가장 가시적인 지표의 하나는 주식시장 추세다. 단기적 주가 변동의 과도한 해석은 피할 일이지만, 흔히 주가는 거시경제 현황과 전망을 비춰주고 기업 경기 흐름을 가늠하는 유의미한 선행(先行) 지표다.

이달 초 미·중 무역 분쟁 해결을 위한 1단계 합의로 미국 3대 주가지수가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산타 랠리'(크리스마스와 연말의 상승장세)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시장은 거짓말하지 않는다"(Markets never lie)는 말처럼 금융시장은 종종 과잉 반응으로 과열과 파열을 키울 때도 있지만 실시간으로 주어지는 정보에 가감 없이 반응하는 특성을 가진다. 금융은 경제의 심장과 혈맥이고 금융시장은 실물 경기를 투영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국제 금융 허브 지각변동… 런던·홍콩 지고, 싱가포르 뜨고

올 한 해 국제 금융계는 전례 없는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홍콩 시위 사태 확산과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실현 가능성이 커지며 홍콩·런던 등 국제 금융 허브의 지각변동이 일어났고 싱가포르가 상대적으로 떠오르는 상황을 맞았다. 국제 통화 정책이 확장적 기조로 선회함에 따라 금리 인하 및 양적 완화 여파로 초저금리 시대를 열었고 독일, 일본 등 마이너스 금리로 거래되는 채권이 급증하면서 전 세계 채권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0%를 넘어서는 초유의 사태를 빚었다. 늘어난 유동자금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 주식시장으로 이동해 '불황 속 활황' 장세를 이어 갔고 부동산·인프라 등 대체 투자로 쏠리면서 거품 우려도 나온다. 대체 투자 중심 세계 최대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주가는 올해 70%나 뛰었다.

미국 증시의 사상 최고치 행진은 트럼프 대통령 탄핵 소추라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견고한 경기 호황을 반영한다. 11월 산업 생산이 전월 대비 1.1% 상승, 2년 만의 최대 월간 증가 폭을 기록했고 50년 이래 최저 실업률 등 고용 지표의 지속 개선도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증시 활황의 핵심 드라이버는 기업 친화적 정책으로 미국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11.3%로 34년 만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법인세율을 25%(실효세율 19.9%)로 올린 우리나라와 대조를 이룬다.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내년도 금리 동결 발언은 경제 전망의 자신감과 정치적 독립성으로 읽히며 투자자 신뢰를 높였다.

선진국 증시 연 24% 수익, 한국은 7%, 삼성전자 빼면 사실상 마이너스

주요 국가별 올해 증시 실적은 미국을 필두로 일본·프랑스·독일 등 선진국이 평균 연수익률 24%로 앞섰다. 국가별 편차가 큰 신흥 시장의 평균 연수익률은 13%였고, 20% 상승한 중국은 선방했으나 역대 최고치 대비로는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 증시의 연수익률(7%)은 주요국 중 바닥으로 경제 기초 체력 약화와 기업 실적 둔화가 원인으로 꼽힌다. 그나마 국내 증시 시가총액의 약 4분의 1을 점하며 올해 50% 급등한 삼성전자 주가를 빼면 코스피는 사실상 마이너스다. 11월부터 이달 초까지 20거래일 연속 순매도에 따른 5조원대 외국인 자금 이탈은 한국 경제에 대한 경고 메시지다.

나아가 미국 나스닥과 한국 코스닥 주가의 엇갈린 행보는 극명하게 갈리는 신산업과 벤처기업의 현황과 전망을 보여준다. 나스닥 지수는 2018년 충격을 딛고 올해 크게 반등하면서 지난 2년간 25% 넘게 상승했지만 같은 기간 코스닥 지수는 20% 이상 떨어졌다.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 '타다' 금지법 논란이 보여주듯이 4차 산업 전반에 걸친 혁신 성장은 답보 상태다. 정부의 '인공지능(AI) 강국 건설' 구호도 이용자나 투자자에게는 허망하게 들린다는 사실을 코스닥 시장 위축이 보여주는 셈이다. 국내 증시 침체의 주범은 주식 '공매도'가 아니라 성장 정책 '공회전(空回轉)'이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한국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아르헨티나보다 떨어져 국내 주식의 저평가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을 보면 분명해진다. 코스피 평균 PBR은 0.9, 금융회사 평균은 0.5로 세계 최하위 수준인데 국내외 투자자들이 정치 경제 불확실성을 느끼고, 국내 기업 경영 환경을 어둡게 평가한다는 얘기다. 통상 1.0 미만의 PBR이란 시장가치가 청산 가치보다도 낮다는 의미다. 블룸버그 통계에 따르면, 한국 PBR은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에 비해서도 떨어진다. 세계 주요국 PBR은 미국(3.47)을 위시한 선진국은 대체로 높고 신흥국으로는 대만(1.97), 중국(1.67), 러시아(1.11) 등이 뒤따르고 있다.

세계적 경제학자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한국 정부가 포퓰리즘 정책으로 과거 성공을 낭비하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을 했다. 지난달 서울에 다녀간 저명한 미래학자 제롬 글렌 밀레니엄 프로젝트 회장도 반세기 전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 미만에서 출발한 한국과 아프리카 가나의 운명을 가른 ‘한강의 기적’은 장기적 비전과 전략에서 비롯했다며 단기적 유혹을 뿌리치고 긴 미래를 보는 정치와 정책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총선을 앞두고 100조원을 투입해서 내년도 2.4% 성장에 ‘올인’하겠다는 정부 계획은 시장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2020년이 희망의 새해가 되려면 돈 풀기에 앞서 반시장적 정책부터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