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베를린에서 지낼 때 최초로 향수병이라는 것에 걸려보았다. 춥고, 배고프고, 우울하고,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고, 내 몸은 필요 이상으로 밥이나 죽 같은 따뜻한 탄수화물을 원하고 또 원했다. 여름이었는데도 그랬다. 여름의 베를린은 서울의 겨울보다는 당연히 춥지 않았지만 내게는 처음 겪는 '여름 추위'를 날 방패가 없었다. 양말도 없고, 패딩도 없고, 렌털 하우스에 있던 전기장판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나는 꽤 오래 앓았던 그 질병의 이름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SAD. 'seasonal affective disorder', 한국어로는 '계절성 정서장애'라고 한다. 이 병은 주로 해가 잘 들지 않고 어둠이 지속되는 겨울에 걸리는 정신질환의 하나로 '겨울 우울증(winter depression·WD)'이라고도 한다. 나는 향수병이 아니라 겨울 우울증에 걸렸던 거다. 우박이 떨어지고, 마른 낙엽이 굴러다니고, 뼈마디가 으스스할 정도로 바람이 부는 베를린의 7월을 나는 '겨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생각하자 7월은 겨울이 되었다.
겨울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많은 나라는 어디일지 궁금해졌다. 아마도 열대지방보다는 한대지방일 것이며, 미국처럼 낙천적인 사람이 많이 산다고 오해되는 나라보다는 북유럽이 그렇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슬란드에는 그 병의 환자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아이슬란드보다 미국 북동부에 겨울 우울증 환자가 더 많다는 얘기였다. 근거가 재미있다. 겨울 우울증에 걸린 아이슬란드인들의 생존율이 떨어졌고, 그 결과 그들의 DNA는 전해지지 못했고, 몇 세기에 걸쳐 겨울 우울증 DNA가 사실상 전멸했다는 논리다. 아이슬란드에서는 행복한 사람이 '적자(適者)'라는 말이다. 에릭 와이너가 쓴 여행 산문집 '행복의 지도'에서 읽었다.
그가 아이슬란드에 접근하는 방식이 기묘하다. 거의 아무도 아이슬란드를 찾지 않는, 한겨울에 도착한다. 이것은 상당히 이상한 일이다. 아이슬란드 관광산업은 매해 5월에서 시작해 8월에 끝난다며, 어쩌다 9월에 아이슬란드에 가게 된 무라카미 하루키는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책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호텔은 대부분 영업을 아예 중단하거나 규모를 크게 줄인 상황이었다. 온 나라에 '이제 문 닫습니다' 하는 분위기가 가득해서 덕분에 북변(北邊)다운 적막감 하나는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한겨울의 아이슬란드에 가서 행복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추상적 관념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연구자 루트 벤호벤에 따르면, 아이슬란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순위권에 있는 나라다. 내가 파악하기에 에릭 와이너가 아이슬란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요인으로 뽑은 것은 대략 세 가지다. 술, 방종, 예술. 그런데 아이슬란드에서의 술과 방종과 예술은 다른 나라의 그것들과는 좀 다르다. 좀 다른 기준으로 봐야 한달까?
먼저 '술'부터 이야기하자면, 1930년대까지 아이슬란드에는 금주법이 있었다. 그리고 1989년까지는 맥주 금지법이 있었다. 1930년에 금주법이 풀리자 술을 엄청나게 마셔대기 시작했고, 1989년에 맥주 금지가 풀리자 주종을 맥주로 바꿔서 또 엄청나게 마시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 무조건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술값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마시면서 취하지 않는 건 돈 낭비라고 생각한다는 거다. 그리고 '방종'에 대한 이야기.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절제를 절제하는 사람들'이라고 작가는 표현하고 있다. 바이킹 조상 탓이다. 바이킹 조상들은 살기 어려웠던 시절 고기를 잡거나 곡식을 거두면, 그래서 먹으면, 또 언제 먹게 될지 몰랐기 때문에 폭식했다. 바이킹 후손들은 조상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몸에 있는 DNA가 작동한다는 논리다. 마지막으로 '예술' 이야기. 아이슬란드 사람들 대개가 음악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쓴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과장하면 국민 절반이 예술에 종사한다는 이야기를 많이도 들었다. 에릭 와이너는 말한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한 번도 시를 쓴 적이 없는 아이슬란드인을 기리기 위해 동상을 세우는 날이 올 거라는 농담을 한다고.
이 '술'과 '방종'과 '예술'이라는 행복의 척도를 결합한 사람이 있으니, 아이슬란드 최고의 시인이라 불린다는 에길 스칼라그림손이다. 그는 바이킹이었다. 세상에나… 이보다 더 아이슬란드적일 수 없다. '아름다운 시를 쓴 비열한 개자식'으로 널리 알려진 그 시인은 꽤 괴팍해서 기분이 상하면 사람의 눈알을 파버리기도 했다고 한다. 에릭 와이너는 이렇게 덧붙인다. "이처럼 격렬한 문학적 경향 덕분에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행복한 걸까? 잘 모르겠다. 언어를 사랑한다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지는 않을지 몰라도, 자신의 절망을 유창하게 표현할 수는 있다. 이건 대단한 일이다. 시인이라면 누구나 (블로거도 마찬가지다) 알고 있듯이, 불행도 표현하면 줄어든다."
그리고 아이슬란드에 전염됐는지 이런 시인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땅은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땅도 하는 일이라고는 그냥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뿐이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의 땅은 다르다. 이 땅은 쉭쉭 소리를 내고, 침을 뱉고, 트림을 한다. 가끔은 방귀도 뀐다. (…)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땅이 내는 이 갖가지 소리와 가끔 뀌는 방귀가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이다." 하루에도 스무 건 일어나는 지진과,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이 자주 일어나는 지각변동과 화산활동을 그는 아이슬란드인의 행복과 연관 지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나는 무엇보다 아이슬란드인들이 주고받는 인사가 인상 깊었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komdu sœll'이라고 흔히 인사하는데 직역하면 '행복하게 오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헤어질 때는 'vertu sœll'이라고 하는데 '행복하게 가다'라는 뜻이고. '식사하셨어요?' 하고 묻는 우리의 인사 습관이 겹쳤다. 또 내가 겨울 우울증에 걸렸던 베를린에서, 인사라든가 따뜻한 말을 거의 주고받지 않았다는 것도 떠올랐다.
아이슬란드식 인사를 다시 생각한다. 아이슬란드어를 전혀 모르는 처지에서 풀어보자면 이런 뜻일 것이다. '당신이 와서 행복해요'라거나 '(당신을 보니) 당신이 오는 길이 행복했군요'. 또 '행복하게 가세요'나 '행복한 길로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