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톤즈 함 온나(한번 와라). 오면 10킬로그램 빼줄게."
시작은 이 한마디였다. 대전 대흥동성당 주임 박진홍(50) 신부가 2006년 초 남수단 톤즈로 고(故) 이태석(1962~2010) 신부를 찾아가 한 달간 함께 지내게 된 건. 박 신부는 이 신부의 10주기(내년 1월 14일)를 앞두고 13년 전 현지에서 목격한 이 신부를 생생히 적은 책 '톤즈를 웃게 한 사람'(바오로딸출판사)을 최근 펴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90년대 초반 시작됐다. 소속은 각각 살레시오수도회(이 신부)와 대전교구(박 신부)로 달랐지만 이내 '형' '동생'이 됐다. 고향(부산)이 같은 데다 박 신부는 어린 시절 이 신부가 작곡한 찬송가를 부르며 자란 인연도 있었다. 대전교구 사제가 된 박 신부가 청소년학 전공으로 중앙대 대학원에 진학한 후 서울 대림동 살레시오수도회에서 지내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톤즈에서 활동하던 이 신부가 휴가 때 귀국하면 이곳에 머물렀다. 2006년 톤즈 초청도 겨울방학에 맞춰 이뤄졌다. 당시 현장 경험을 인터넷에 올린 글을 모았기에 책의 분위기는 밝다.
다큐와 영화로 널리 알려진 이태석 신부의 활동이지만 후배 사제의 눈으로 본 모습은 또 다른 감동을 준다.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각각의 부족어로 미사를 드리고, 나환자촌에서는 미사를 드린 후 모인 헌금을 그 자리에서 환자들에게 나눠준다. 박 신부는 부러진 다리를 끌며 100㎞를 닷새 동안 걸어온 소년도 직접 만났다. 이 신부는 "간단한 치료만 하면 되는데 이곳 아이들은 다치면 운명이라 생각하고 치료를 포기해서 앉은뱅이가 되거나 기어다닌다"며 "이래도 톤즈가 슬프지 않은가?" 하고 묻는다.
톤즈에서 '슬픈 풍경'은 일상이다. 신부의 지참금 때문에 두 마을이 '전쟁'을 벌이고, 하루만 일찍 병원에 왔어도 살릴 수 있었던 말라리아 환자가 죽어나간다. 웬만하면 포기할 법한 상황. 그러나 이 신부는 여기에 학교와 성당, 병원을 짓고 아이들을 가르쳐 브라스밴드를 만들었다. 브라스밴드 결성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우리로 치면 강원도와 경상도 전역쯤 되는 면적에 흩어져 살기 때문이다. 전화, 인터넷도 없다. 그런데도 이 신부가 '밴드 집합'이라고 사발통문을 돌리면 정한 날짜, 시간에 아이들이 모였다. 이 신부가 뿌린 희망의 씨앗을 맛본 아이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톤즈 생활의 윤활유는 이 신부의 유머(혹은 아재 개그)였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열기 속에 샤워를 마치고 나온 이 신부는 박 신부에게 말한다. "빨리 샤워해라. 더운물 나온다." 이 신부는 유머, 희생, 사랑으로 톤즈를 웃게 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완전 연소'했다. 그렇게 '톤즈의 성자(聖者)'가 됐다.
한 달 방문을 마치고 톤즈를 떠나는 날, 이 신부는 브라스밴드 연주로 박 신부를 환송했다. 박 신부는 '형님'이 세상을 떠난 후 동남아 등 오지에서 또 다른 '이태석 신부'를 여러 명 만났다고 적었다. 캄보디아 바닷가에서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수녀, 태국 북부 오지 마을에서 현지인들과 성탄 미사를 준비하는 신부, 인도네시아 시골 마을에서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 마음을 모아 다리를 설치하는 신부…. 박 신부는 "그들은 모두 선교사였다"며 "선교사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자신의 주변을 행복하게 만들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이라고 했다.
['울지마 톤즈2' 개봉… 10주기 추모행사 다채]
이태석 신부 선종(善終) 10주기를 맞아 살레시오수도회는 다양한 추모행사를 마련한다. 1월 12일 광주 살레시오고등학교 내 성당에서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가 집전하는 추모 미사가 열린다. 1월 14일엔 부산 서구 톤즈문화공원에서 이태석 기념관이 문을 연다. 영화 '울지마 톤즈2: 슈크란 바바'도 1월 9일 개봉한다. 이 신부가 생전에 톤즈 소식을 기고했던 월간 '생활성서'는 1월호에 이 신부 추모 특집을 꾸몄고, 살레시오회는 2020년 스케줄러를 이 신부 선종 10주기 헌정판으로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