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인화지 봉투로 가방·파우치 등 제작
행안부 3000만원 자금 지원받아 창업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가 스타트업 창업에 뛰어 들며 한국 경제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CEO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솔직한 속내를 들을 수 있게 취중진담 형식으로 인터뷰했습니다.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 미래를 함께 탐색해 보시죠.

대구시 중구 봉산동에 위치한 석주사진관 안. 버려진 인화지 봉투로 만든 가방, 파우치, 필통 등이 사진관 한 편에 진열돼 있다. 업사이클링(Upcycling) 브랜드 ‘제제상회’의 김경란(39) 대표가 만든 제품들이다. 업사이클링은 누군가 버린 쓰레기를 재활용(Recycling)하는 차원을 넘어 디자인이나 활용도를 더해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시키는 친환경 운동을 말한다. 제제상회는 사진관에서 버려지는 소재를 이용해 가방, 파우치 등 생활용품을 제작 판매하면서 업사이클링을 하고 있다.

◇남편 하는 사진관에서 시작

2017년 김 대표의 남편이 운영하는 석주사진관에서 예스러운 물건을 파는 작은 소품 가게로 출발했다.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방식을 이용해 흑백 사진을 찍어주는 석주사진관에 어울릴 법한 태엽시계, 참빗 등 골동품을 팔았다. 사진을 몰랐던 김 대표가 사진관에서 남편과 재밌게 지내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었다.

김경란 제제상회 대표

"대학에서 컴퓨터게임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으로 공부했어요. 졸업 후 입사한 회사에서는 스마트폰 GUI(Graphical User Interface) 디자인 일을 맡았습니다. 남편과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일을 그만뒀죠. 이후 남편이 일하는 사진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전 사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어요. 이 공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제제상회’를 차렸습니다."

제제상회를 운영하면서 친환경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두 딸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친환경 제품에 평소 관심이 많았습니다. 유해한 물질을 만들어내고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을 계속 쓰면 자식 세대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닐지 걱정이 들었죠." 하늘이 뿌연 미세먼지에 가려질 때면 미세먼지를 몰랐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두 딸은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 속에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환경을 보호하려는 마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일회용 제품을 최대한 적게 쓰고 장 볼 때도 장바구니를 사용하는 등 평소 습관을 바꾸게 됐죠. 그러면서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업사이클링에도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인화지 봉투로 만든 제품들

내가 할 수 있는 업사이클링을 찾았다. 사진관에서 배출되는 쓰레기 '인화지 봉투'에 시선이 갔다. 인화지 봉투는 사진을 인화할 때 쓰이는 종이를 담는 봉투다. 아날로그 사진관에서 쓰이는 인화지는 빛을 받으면 붉게 타버린다. 이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인화지 봉투는 차광 효과가 확실한 필름으로 만든다. 겉은 종이지만 안은 펄프와 차광 필름으로 압착 처리돼 있다. 종이와 차광 필름지가 서로 붙어 있어서 종이나 비닐 중 어느 것으로도 분리수거할 수 없고, 재활용도 불가능하다.

"인화지 봉투를 그냥 버리기엔 아깝다고 생각했어요. 차광 효과가 확실하다는 장점을 활용해 어떤 물건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인화지 봉투 업사이클링으로 방향을 정하고 행정안전부 지원 사업을 알아봤다. 한국 업사이클센터의 추천을 받아 행안부에서 3000만원 창업 자금을 지원받았다.

남편 사진관에서 나오는 봉투로는 모자라 다른 사진관에서도 봉투를 공급받아, 작년 10월 필름과 화장품 보관용 파우치를 첫 제품으로 출시했다. "일반 천으로 만들어진 파우치보다 차광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에 필름을 잘 보관하구요. 화장품용 파우치는 차광효과를 통해 화장품의 자외선 차단 기능이 오래 지속되도록 합니다."

김경란 대표의 남편이 운영하는 석주사진관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 대표 부부

◇사진관 봉투로 만든 가방

뒤이어 인화지 봉투의 내구성을 활용해 가방을 만들었다. 개발을 위해 꼬박 몇 개월간 가정용 미싱 기계 앞에 앉아 재봉만 했다. 인화용 봉투는 일반 천보다 겉이 미끄러워 재봉하기 힘들다. 손이 미끄러져 재봉틀 실을 잘못 박기 일쑤였다. 소재에 적응하는 데만 두 달이 걸렸다.

-개발 과정을 알려주세요.
"처음 실험 삼아 파우치에 지퍼를 달아보고 재봉을 해봤어요. 찢어지지 않더라고요. 이 내구성을 이용해서 가방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맨 처음엔 손잡이가 두 개인 '토트백(Tote Bag)'을 만들었어요. 시제품을 만들어 남편에게 보여줬습니다. 그러자 양손을 다 쓸 수 있게끔 어깨에 맬 수 있는 가방도 만들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줬어요. 물건을 수납할 수 있는 주머니도 달려 있으면 좋겠다고 조언해 줬구요. 의견을 반영해 숄더백과 클러치백도 제작했습니다. 그렇게 총 세 종류의 가방을 만들고 있습니다."

-직접 손으로 다 만드는 건가요?
"네. 전부 수작업으로 만들어요. 한 달에 30~50개 정도 생산합니다. 애초 대량 판매가 목적이 아니었어요. 제가 직접 만들 수 있는 만큼 물건을 생산하고 재고를 남기지 않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친환경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진짜 목표입니다."

손님에게 제품을 설명하는 김경란 대표

-일반 에코백(자연에서 분해되는 재료로 만드는 친환경 가방)과 어떻게 다른가요?
"소재나 무게, 디자인 면에서 달라요. 일반 에코백은 별도 원단이 필요하지만, 제제상회 가방은 버려지는 소재로 만들죠. 섬유 생산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또 인화지 봉투는 섬유나 캔버스지보다 가벼워서 일반 에코백보다 무게가 덜 나갑니다. 디자인 면에서는 오래 쓸수록 섬유처럼 부들부들해지고 구김이 멋스러워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무거운 물건을 담기엔 약하진 않나요?
"8개월째 매일 가방을 들고 다니고 있어요. 직접 내구성 테스트를 하는 셈인요. 비 맞아 젖은 가방을 말려도 보고. 다양한 방식으로 가혹하게 다뤘는데요. 찢어지지 않았어요. 고객들이 내구성에 대해 물어보시면 제 경험을 말씀드립니다."

가방을 찾는 고객이 다양하다.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개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제제상회를 찾는다. 독특한 소재에 매료돼 패션 목적으로 구매하러 오는 것이다. 먼 지역에서 주문하는 경우도 있는데 자연 분해되거나 재활용이 가능한 포장 용기에 물건을 담아 배송한다.

"설탕을 추출하고 남은 사탕수수 찌꺼기로 만든 종이로 포장 용기를 제작했습니다. 3개월이면 자연 분해돼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아요. 테이프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비접착식 조립법도 사용했습니다. 업사이클링 제품을 보내는 건데 환경오염의 주범인 비닐과 테이프를 쓰기 싫었어요. 친환경이라는 특성이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포장지를 친환경 소재로 했습니다."

인화지 봉투를 모으는 김경란 대표와 김 대표가 만든 가방

◇스위스 프라이탁 같은 가치 기업

업사이클링에 대해 오해가 많아 안타깝다.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힘이 들기도 한다. 열심히 만들고 알리는 방법 밖에 없다. "가끔 '버려진 소재로 만든 물건인데 생각보다 싸지 않네’란 말을 들어요. 업사이클링 제품은 대부분 수작업으로 만들기 때문에 인건비를 감안하면 일반 소재 제품보다 오히려 비싼 경우가 많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위스 업사이클링 가방 브랜드인 ‘프라이탁(Frietag)’ 평균 가격은 30만원에 이릅니다. 결코 싸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죠. 하지만 스위스 내에서는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좋은 물건을 열심히 만들겠습니다. 그래야 소비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테니까요."

친환경 운동에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보람을 느낀다. 소비자들이 올린 좋은 후기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디자인이 예쁜데 환경적인 의미도 있어서 좋다는 후기가 많아요. 인화지 봉투를 제공해주신 사진관 사장님들께 가방을 선물해 드린 적이 있어요. 가방을 직접 보시기 전에는 이 소재로 어떻게 가방을 만들 수 있냐며 의아해하셨죠. 하지만 가방을 받고 나서는 ‘버려진 소재로 이렇게 좋은 제품이 만들어지는구나’ 말씀해 주세요. 이런 말 들을 때 기분이 좋습니다."

-앞으로 계획은요.
"업사이클링 제품을 다양하게 제작해서 친환경을 계속 알리고 싶어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해요. 환경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습관은 없애 나가야 합니다. 이런 메시지를 계속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