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13일 국회 본회의를 열고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을 상정하려고 했으나 무산됐다. 민주당과 군소정당 연합인 ‘4+1' 협의체가 선거법 개정안 단일안을 내놓지 못한 상태에서, 자유한국당이 본회의 첫번째 안건인 ‘임시회 회기(會期) 결정' 안건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신청한 것이 여당의 발목을 잡았다. 임시국회 회기를 언제까지 할 것인지를 정해야, 그 다음으로 임시국회에서 다룰 안건을 상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일정을 정하는 문제에 필리버스터가 가능한지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면서 일단 이날 본회의 개의가 어려워진 것이다.

자유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열린 '패스트트랙 법안 날치기 상정 저지 규탄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당초 문희상 국회의장과 민주당 이인영, 한국당 심재철,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3시 본회의를 열기로 합의했다. 다만 이번 임시국회를 언제까지 할 것인가를 두고는 이견이 있었다. 회의의 기간을 정하는 회기 결정 안건은 통상 국회 임시회 첫 본회의에서 가장 먼저 상정된다.

한국당의 필리버스터를 뚫고 올해 안에 선거법 개정안 등 패스트트랙 법안 5건을 처리하려는 민주당으로서는 3~4일짜리 임시국회 여섯번을 연달아 연다는 전략이었다. 필리버스터는 회기 종료와 함께 끝나고 다음 회기에서 곧바로 표결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 전략에 따라 오는 16일 첫번째 임시국회를 마친다는 계산이었다. 그러자 한국당은 '임시국회는 30일로 한다'는 국회법 관행을 근거로 이번 임시국회는 내년 1월 9일까지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은 이번 임시국회 회기를 16일까지로 하는 ‘회기 결정’ 안건을 본회의 첫번째 안건으로 상정해 표결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오후 2시쯤 한국당은 이 안건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또 한국당 소속 의원 108명은 '회기 결정' 안건에 대한 수정안을 제출했다. 이번 임시회의의 회기를 결정하는 안건부터 필리버스터에 들어가 사실상 패스트트랙 법안의 본회의 상정 자체를 원천봉쇄한다는 전략이었다.

결국 이번 임시회 일정을 정하는 안건에 대해 필리버스터가 가능한지를 두고 민주당과 한국당의 의견이 맞서면서 이날 본회의 소집은 무산됐다. 이로써 내년 4·15 총선 예비후보자 등록일인 오는 17일 이전까지 선거법을 처리하려던 민주당의 계획도 차질이 불기피해졌다.

이와 관련 문희상 국회의장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오전에 3당 원내대표 회동의 합의를 이행하지 못해 유감"이라며 "한국당은 무제한 토론을 철회하고, 여야 3당은 오는 16일까지 (본회의 개의와 관련한) 실질적인 합의를 도출하라"고 했다.

국회의장실은 국회법상 국회 의사 일정을 결정하는 안건은 필리버스터 신청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시국회 일정은 여야 교섭단체 대표의원 간 합의로 결정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에 일정 안건이 본회의에서 토론에 부쳐진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임시회 회기 일정을 정하는 안건에 대해서 필리버스터를 허용하면, 임시회가 끝날 때까지 다른 안건은 상정 자체가 불가능해 필리버스터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한국당은 "의사 일정 결정 안건이 필리버스터 대상이 아니란 국회법 조항이 없고 실제 일정 안건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한 전례도 있다"고 맞섰다. 한국당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이런(의사 일정 안건은 필리버스터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은 민주당이 특정 목적을 위해 비정상적으로 짧은 임시 회기를 정해 생기는 문제일 뿐"이라며 "정상적으로 30일 임시회를 한다면 그 사이에 필리버스터는 끝날 것"이라고 했다. 주호영 의원은 "제헌국회 이후 회기 결정에 관해 토론하고 표결로 결정한 게 2건이나 있다"며 "국회법 제106조1항에 의하면 부의 된 모든 안건에 관해서는 필리버스터 토론이 가능하며 의장은 임의로 거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3년 9월 2일 본회의에서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이 국회의 통진당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에 반발하며 일정에 관한 안건에 대해 토론을 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