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논설위원

한나라당·새누리당에서 이어진 자유한국당의 최근 역사는 친박계와 친이계(비박계) 간 골육상쟁(骨肉相爭)의 기록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계파가 만들어졌지만 계파 갈등은 정권을 다시 내놓게 하는 주원인이 됐다. 아직 그 그림자에서 한국당이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한국당에 황교안 대표 체제가 등장한 지 10개월이 되어간다. 친박·비박이 분점해온 당내 세력 분포가 바뀔 조짐이 보인다고도 한다. 이른바 '친황(親黃)'의 등장이다. 당내 세력 구도가 종전 친박 대 비박에서 친황 대 비황(非黃)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절대황(黃)정'이란 조어도 등장했다. 새로운 리더가 등장하면 그를 중심으로 계파가 형성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친황계가 마치 당을 장악한 듯한 표현은 과장"이란 반론도 적지 않다. 친박·비박이 12년을 양분해온 한국당은 과연 계파 재조합을 거쳐 새로운 구도로 변신 중인 걸까.

◇친황, 새로운 계파의 등장?

황 대표는 전당대회를 앞둔 지난 1월 한국당에 입당했다. 입당하는 날 의원 6명이 따로 모여 전당대회를 준비했다고 한다. 추경호 박완수 민경욱 박대출 김기선 이완영 의원 등이다. 정치권 입문 몇 달 전, 황 대표는 야인 신분으로 출판기념회를 연 적이 있다. 그때 그곳에 얼굴을 내민 인사가 원유철 유기준 윤상직 이채익 정종섭 추경호 송언석 의원 등이다. 전당대회에서 황 대표 지지 기반은 친박계였다. 박대출 민경욱 의원 등이 이끄는 친박 성향 '통합과 전진'이 황교안을 지지하는 전위대 역할을 했다. 여기에 과거 비박계로 분류되던 인사들도 합류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친황계가 만들어졌다.

황 대표 측근들에 따르면 지금의 친황계는 대략 ①황 대표와 맺은 과거 인연이 측근으로 이어진 경우 ②당직을 맡으며 황 대표 측근이 된 경우 ③차기 대선 주자로서 황 대표를 지지하는 인사 등이라고 한다. 대표적 측근 박완수 사무총장은 황 대표가 창원지검장 시절 창원시장이었다. 추경호 의원은 황 대표가 국무총리 시절 국무조정실장으로 호흡을 맞췄다. 정점식 의원은 황 대표가 아끼는 검찰 후배다. 황 대표 체제에서 당직을 맡으면서 친황이 된 경우는 김명연 김도읍 이헌승 송언석 의원 등이다. "다음 대선에서 황교안 외 대안이 어디 있느냐"며 황 대표를 지지하는 의원도 다수 있다. 이 친황 그룹은 한국당 의원 108명 가운데 대략 20~30명 정도 된다고 한다. 많다고 할 수 없지만 적은 숫자도 아니다. 당 안팎 의견을 취합해 한국당 의원들 성향을 분류하면 친박계, 비박계가 각각 30여 명, 이도 저도 아닌 중립 성향 20여 명 정도라고 한다. 숫자로만 따지면 친황계는 친박계나 비박계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얘기다.

◇"중간 보스도 없고 모이지도 않는데…"

황 대표 본인은 계파 얘기만 나오면 강하게 손사래를 친다. "친황이 생겨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황당했다. 제 머릿속에 그런 것 없다." "당을 망치는 계파 활동은 필벌(必罰)하겠다." 거의 알레르기 반응이다. 하지만 정당을 이끌고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리더에게 계보가 없을 수 없다. 과거 같은 행태는 아닐지라도 보스를 중심으로 의원들은 뭉치게 마련이다. 과거 3김 시대 계파 기준은 '돈과 공천 보장'이라고 했다. 친이·친박 시절엔 '적어도 공천은 보장한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친황은 아직 계파라기보다 '황 대표에 대한 호감 그룹'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친황으로 분류되는 A 의원은 "친황계라며 따로 모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재오(친이계) 김무성(친박계) 같은 중간 보스도 없다. 이런 걸 계파라고 할 수 있느냐"고 했다. 최근 원내대표 경선을 통해 친황계 실력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평가도 있다. 당직자 B씨의 말이다. "황 대표 측 일부 인사가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김선동 의원 지원 사격을 했는데, 되레 의원들의 '친황' 견제 심리를 자극했다. 결국 친박 비박 할 것 없이 똘똘 뭉쳐 심재철을 밀었다. 결과는 52(심재철) 대 27(김선동)이었다. 이것이 친황의 현주소다."

친황이 아직 계파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점은 황 대표 측근들도 인정한다. 황 대표 측근 C씨는 "정치권에서 '친' 자를 붙이려면 적어도 공천을 줘야 한다. 지금 굳이 친황이라면 정점식 의원 정도"라고 했다. 그는 "전당대회 때 친박이 황 대표를 밀었다고 '친박=친황'이라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들은 대세를 살펴 지지했을 뿐"이라고 했다. 원외 당직자 D씨는 "김세연 의원이 황 대표를 맹공했을 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과거 계파였다면 보스를 엄호하려고 미친 듯 달려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박찬주 대장 영입 건 등을 두고 황 대표가 공격받을 때도 제대로 옹호하고 나선 의원은 몇 되지 않았다.

◇"친이·친박은 퇴조했지만 새로운 중심도 없다"

리더 없고, 모이지도 않는 것으로 하자면 한국당을 양분해온 친박·비박의 최근 상황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서 주목할 점은 당내 양 계파 친박·비박계의 퇴조와 서로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이라고 당직자들은 입을 모았다. 비박계는 당내 최다선 김무성 의원을 중심으로 뭉쳐 있었다. 하지만 결속력이 많이 약해졌다고 한다. 2017년 말까지만 해도 55표가 결집하면서 김성태 원내대표를 만들었지만 이후 김학용, 강석호 의원이 출마한 원내대표 경선에서 30표 안팎 득표에 그쳤다. 비박계의 현 수준이 딱 그 정도란 얘기다. 비박계 한 핵심 의원은 "구심점이 없다. 가끔 모여 밥이나 먹는 정도"라고 했다.

한 당직자는 "한국당을 10여 년 지배해온 친이·친박 계파는 이제는 과거 분위기나 친소 관계로만 남았다"며 "계파보다는 공천 이해에 목을 매는 개인의 선호를 중심으로 당이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친박·비박은 퇴조했는데 친황은 제대로 서지 못한 게 지금 한국당의 현실"이라고 했다. 이런 당내 구조가 황 대표에게는 위기이자 기회라는 의견이 있었다. A 의원은 "중심 세력 없이는 개혁도, 공천도 어렵다. 황 대표가 당 개혁을 표방하고 이를 주도할 계파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당직자 B씨는 이렇게 말했다. "무계파 혼란기가 황 대표한테는 오히려 기회의 장이다. 전부 파괴하고 재건해야 한다. 잘되면 그때 가서 비로소 친황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친박 vs 친이 '12년 골육상쟁' 아직 안끝나… 화해도 이별도 못한 채 불안한 공존]

2007년 대선을 앞둔 한나라당은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로 나뉘었다.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기면 곧 본선에서 승리하는 것과 다름없었던 싸움이라 양측은 격렬했다. 친박계의 이명박 후보를 향한 의혹 제기는 여당보다 매서웠다. 경선은 이 후보 승리로 돌아갔고, 박 전 대표는 패배를 받아들였다. 두 계파 충돌이 다시 부상한 것은 2008년 총선 공천이었다. 공천 심사를 전후해 양측 갈등은 극으로 치달았다. 박 전 대표는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했다. '친박연대'가 만들어졌다. 골은 더욱 깊어졌다. MB 집권기에도 세종시 수정안을 두고 격하게 부딪치는 등 양측은 늘 긴장 관계였다. MB 정부 말기 박 전 대표는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전면에 등장한다. 아울러 양 계파 처지는 역전됐다. 당명은 새누리당으로 바뀌었다. 박근혜 정부 아래서 친이는 비박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그 중심에 과거 친박 김무성 유승민이 서게 된다. 정부 정책, 당청 관계를 두고 파열음이 이어졌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공개 석상에서 박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을 강력 비판하기도 했다.

2016년 총선 공천을 앞두고 '진박' 논쟁이 벌어졌다. 계파가 노골적으로 맞부딪치는 공천 전쟁 끝에 총선에서 참패했다. 이윽고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이어지면서 친박과 비박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새누리당은 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꿨고, 탄핵에 찬성한 비박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보수가 필요하다며 당을 나온 사람들은 바른정당을 만들었다. 야당이 된 이후 낮은 지지율 속에서도 양측은 과거 집권 세력 때처럼은 아니지만 종종 계파 싸움을 벌였다. 결국 두 계파는 화해하지도, 헤어지지도 못한 채 현재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