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 공병호TV·공병호연구소 대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패자가 되고 나면 모든 것은 잊히고 만다. 하지만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별세가 사람들에게 특별한 감회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고도 성장기를 상징하는 한 인물이 저세상으로 떠난 일이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딱한 처지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장기 침체의 길목에서 방황하고 있으며, 경제 주체들은 하나같이 지키는 데 급급하다. 역동적으로 세계시장을 내달렸던 시대가 오래된 일은 아닌데도 사람들은 잊어버린 지 꽤 시간이 흘렀다. 불현듯 날아든 김우중 전 회장의 별세 소식이 '그 시대'를 다시 한 번 반추하게 한다.

사람의 한평생은 공적과 과오의 씨줄과 날줄로 엮인 천과 같다. 기업가 김우중에 대한 평가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와 한 시대를 같이했던 사람들이 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한민족 역사에서 그토록 역동적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했던 적이 있었던가 말이다. 일군의 기업가들은 목숨을 걸고 세계시장을 뚫었고 우리는 비약적인 성장과 아울러 기적과 같은 고도성장을 이루었다.

폭발적으로 도약하던 그 시대에 변방과 오지 시장을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정신으로 개척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던 기업인이 김우중이었다.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를 비롯하여 미개척지를 벗 삼아 우리 시장이란 새로운 국토를 넓히는 데 그는 혁혁한 공헌을 하였다. 그와 함께했던 대우맨들은 고스란히 이 나라의 자산이 되어 지금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오늘날은 기업 경영에서 매수합병이 일상적인 일로 자리 잡았다. 그는 부실기업을 인수해서 정상화하는 면에서 능력을 발휘하였고, 그렇게 사세를 키웠다. 주변으로부터 오해와 비판도 많이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인간 김우중은 상인이면서도 공적인 부분에 지나치다 할 정도로 관심이 많았던 인물이다. 부실화된 기업을 두고, 나라에서 이걸 맡았으면 좋겠다고 권하면 그는 기꺼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 시대 기업가들 가운데 '사업보국'이란 기치를 높이 들었던 인물이 많았는데, 이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김우중 전 회장이다.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무엇이든 한다는 것이 그의 사업 철학의 중요한 몫을 차지하였다. 오늘날을 기준으로 보면 부실한 재무 구조를 갖고 지나치게 외형을 확장한 것에 대해 비난받을 소지는 많다. 그러나 자본 축적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사업을 일으켜서 성장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를 염두에 두면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업가는 경영 성과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외환 위기가 닥쳤고, 그 와중에 채무 의존도가 높았던 많은 기업이 넘어졌다. 외환 위기는 30대 재벌 가운데 17개를 넘어뜨렸고, 은행 26곳 가운데 16개가 퇴출되고 말았다. 이따금 그가 불운을 피할 수 있었다면 어떠하였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그 또한 실패한 기업가로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정부와 납세자에게 단일 회사로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거액의 부채를 떠안기고 무대에서 퇴장당하고 말았다.

어느 사이에 우리 사회는 야성을 잃어버린 사회로 변질되고 있다. 모든 성장과 발전의 원천은 누군가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갈 때 가능한 일이다. 인간 김우중이 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는 "개척하라, 도전하라, 실험하라"이다. 날로 악화하는 사업 환경과 의기소침한 사람들을 보면서, 김우중 회장이 생전에 하고 싶은 말은 이랬을 것이다. "우리 한민족은 숙명적으로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임을 절대로 잊지 않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