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범여 군소 정당들이 10일 자유한국당을 배제한 채 512조2504억원 규모의 2020년 정부 예산안을 기습 처리했다. 한국당은 "집권 여당이 군사작전 하듯이 예산안을 날치기하느냐"고 제지했지만, 의결 정족수(148명 이상)를 확보한 범여 정당들은 자신들이 자의적으로 만든 예산안을 그대로 밀어붙였다. 2014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예산안을 여권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더구나 여당이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유승민계 등 원내 1·2야당을 배제한 채 바른미래당 당권파와 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4+1 협의체)과 함께 예산안을 처리한 것은 "반(反)의회적 폭거"라는 비판이 나온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10일 밤 국회 본회의를 열어 더불어민주당과 군소 정당이 만든 내년 예산안을 상정하자, 자유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가 의장석 앞에서 항의하고 있다. 512조2504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은 상정 후 1분 만에 재적 295인 중 156명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한국당은 수정 예산안을 냈지만 문 의장은 “정부가 동의하지 않았다”며 여당 예산안을 표결에 부쳤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이날 저녁 8시 30분쯤 본회의를 열고 민주당과 범여 군소 정당이 합의한 예산안 수정안을 상정했다. 이후 민주당과 범여 군소 정당들은 자신들이 만든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한국당을 제외한 재석 의원 162명 중 찬성 156명, 반대 3명, 기권 3명으로 가결됐다. 통상 예산안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거친 뒤 여야 교섭단체 원내 지도부 간 합의를 통해 본회의에서 처리돼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의 모든 과정에서 원내교섭단체인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원내지도부가 배제됐다.

통과된 예산안 수정안은 총 513조4579억원 규모의 정부 원안에서 1조2075억원이 순삭감된 총 512조2504억원 규모다. 7조8674억원이 증액되고 9조749억원이 감액됐다. 올해 예산 469조6000억원보다 9.1%(42조7000억원)가 증가한 것으로 사상 최대 규모의 '수퍼 예산'이다.

문 의장은 한국당 의원들의 반발 속에서 정부 원안과 함께 '4+1 협의체'가 만든 수정안을 차례로 상정했다. 한국당이 독자 제출한 499조2539억원 규모의 예산안 수정안은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부동의'로 표결에 부쳐지지 않았다. 문 의장은 예산안 통과 직후 바른미래당 소속 주승용 국회 부의장에게 본회의 사회권을 넘긴 뒤 귀가했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국회의장이 화장실에 숨어들어가서 사회권을 이양하는 꼼수까지 쓰느냐"며 "세금을 완벽히 도둑질하기 위한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했다. 한국당은 공무원이 여당 편을 들었다며 홍남기 부총리에 대한 탄핵 소추안도 추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