警, 3차례 자료 요구에 5~10월 말 靑보고 공문 등 모두 제출해
檢 "자료서 下命 단서 포착 수사 불가피...경찰이라도 했을 것"
靑·與 "검찰개혁 막는 수사 아니냐"...연일 검찰에 맹공 퍼부어
檢 "정치적인 의도 전혀 없다,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는 것"

더불어민주당 이해찬(오른쪽) 대표가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왼쪽은 이인영 원내대표.

청와대와 경찰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수사를 두고 청와대를 비롯해 여권에서는 연일 검찰을 공격하고 있다. 현 정부가 추진중인 검찰개혁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이 사건 수사를 시작했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그러나 청와대의 개입 실체는 점차 드러나고 있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지난 3일 고민정 대변인을 통해 "피의사실과 수사상황 공개를 금지하는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 제도가 시행되고 있음을 명심하라"며 검찰에 경고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이튿날 "검찰이 결백하다면 지금이라도 검·경 합동수사단을 꾸려 모든 증거를 투명 공개하고, 철저히 진상을 밝혀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민주당은 특검을 통해서라도 이 사건을 낱낱이 벗겨내겠다"고 했다.

이어 5일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숨진 특감반원에 대한 검찰의 강압수사 의혹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면서 "검찰은 고인의 사망 원인과 연관될 수 있는 사건 당사자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검찰은 예민한 시기에 청와대와 경찰을 압수수색하고, 캐비넷에 묵힌 사안까지 꺼냈다는 비판이 나온다"며 법무부에 이 사건에 대한 특별감찰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청와대와 여당이 잇달아 수사권과 감찰권을 거론하며 검찰을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의심처럼 검찰은 정말 검찰개혁을 막기 위해 청와대를 겨냥한 수사를 시작한 것일까.

◇서울 온 황운하 사건...고발로부터 600여일, 警 자료 제출로부터는 한 달
사건은 울산경찰이 6·13 지방선거가 임박한 작년 3월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을 수사한 것에서 비롯됐다. 자유한국당은 '야당 탄압' '선거를 앞둔 정치수사'라고 비판하며 같은달 말 울산경찰 수사를 지휘한 황운하 당시 울산경찰청장(현 대전경찰청장)을 직권남용·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울산지검에 고발했다.

600일 넘게 잠잠하던 이 사건은 지난달 26일 울산지검 수사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 김태은)가 넘겨받으며 관심이 집중됐다. 청와대 등 여권이 검찰의 수사 의도를 의심하는 이유가 바로 수사 착수 시점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착수 시점은 올 3월이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 3월 김기현 전 울산시장과 관련된 사건을 모두 종결하고 이 사건 수사가 시작됐다"며 "이후 5월부터 경찰에 관련 자료를 요구했고, 10월 말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자료를 넘겨받았다"고 했다. 검찰은 경찰이 제출한 자료 중에서 범죄 혐의점이 발견돼 수사가 본격화 됐다는 입장이다.

검찰이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밑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검찰 수사관의 사망 사건과 관련해 2일 서초경찰서를 압수수색 했다. 2일 밤 서울 서초경찰서(왼쪽) 길 건너편에 위치한 서울고검과 서울중앙지검.

검찰은 사건이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된 직후 "사안의 성격과 관련자들의 소재지 등을 고려해 신속한 수사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건을 선거사범 등을 전담하는 공공수사2부에 배당했다. 선거법 위반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검찰이 확보한 경찰 내부자료에는 김 전 시장 사건 수사와 관련해 청와대-경찰청 본청-울산경찰청 사이 오간 보고와 지시하달 공문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고 한다. 특히 김 전 시장 관련 경찰의 압수 수색 계획은 물론 중간중간 수사 상황 등이 상세하게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들에 대한 친절한(?) 목록까지 있었다는 것. 경찰은 김 전 시장에 대한 압수 수색 한달 전부터 모두 9차례에 걸쳐 청와대에 보고한 기록이 남아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자료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관여돼 있다는 단서를 발견했고, 지난달 22일, 최근 숨진 검찰수사관을 조사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靑 개입 단서 명시된 문건...경찰 내부서도 "왜 그랬나?" 해석 분분
결국 검찰 수사가 청와대 하명(下命)수사, 선거개입 의혹으로 커진 단초는 경찰이 제출한 내부자료 때문인 셈이다. 이를 두고 경찰 내부에서는 "울산경찰청이 주지 않아도 될 자료까지 넘겨줘서 사태를 키운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한 경찰 간부는 "자료를 보고는 수사를 안할 수 없을 정도의 자료가 몽땅 검찰에 넘어갔다고 들었다"고 했다.

경찰이 청와대와 검찰의 갈등을 키우려는 속내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조국 사건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를 수사할 수 밖에 없는 자료를 순순히 넘겨줬다는 게 이상하다"면서 "수사권 조정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윤석열 총장 등 검찰 지휘부와 청와대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려고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물론 정식 공문으로 처리된 문건들이어서 검찰 요구에 응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반응도 많다. 한 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전임 청장 관련 사건이다보니 괜히 오해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검찰의 자료 요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을 것"이라며 "어차피 안주면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나설 수도 있는데 그런 부담을 왜 지려고 하겠느냐"고 했다.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수사자료 협조 요구에 사실대로 응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며 "청와대 개입 등 예민한 사항을 실무자들이 몰랐을 수도 있고, 알았더라도 어차피 공개될 자료라고 판단해 줬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운하(가운데) 대전지방경찰청장이 3일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에 출연해 유시민(오른쪽)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당사자인 황운하 청장은 "지금 국면이 청와대를 공격하기에 적절한 시점이라 판단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지난 3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검찰 입장에서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가장 핵심적인 동력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기 때문에 공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정치적인 의도는 전혀 없다. 경찰의 자료제출이 늦어져 지연됐을 뿐 수사는 법과 원칙에 따라 진행해 왔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강남일 대검 차장검사도 금주 초 여·야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중요한 자료를 경찰에 요청했는데, 경찰이 10월 말쯤에야 회신해왔다"며 "해당 자료에 중요한 수사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이 있어 수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만남은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검찰 입장을 설명하라'는 의원들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설명 도중 현안 질의로까지 이어진 것이라는 게 검찰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