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분이 7000rpm(분당 엔진 회전수)의 속도로 지나간다. 4일 개봉한 '포드 V 페라리'(감독 제임스 맨골드)는 모처럼 남성 관객들이 극장에서 휘파람을 불며 나오게 해줄 영화다. "볼만한 영화가 '겨울왕국 2'밖에 없다"는 세간의 볼멘소리를 이 작품이 어느 정도 잠재울 것이고,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활개를 치는 세상에도 우리가 극장까지 가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줄 것이다. 대형 스크린이 있는 곳, 음향설비가 좋은 특별상영관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할 영화다.

‘대량 생산의 상징’인 미국 차 포드가 스포츠카 페라리에 도전장을 낸다. 경주에서 이기기 위해 포드는 셸비(데이먼·오른쪽)와 마일스(베일·왼쪽)를 영입한다.

1966년 미국 포드자동차가 스포츠 자동차 경주인 프랑스 '르망 24시'에서 처음으로 페라리 같은 유럽 차를 꺾고 종합우승을 했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미국인 최초로 르망 24시에서 우승했던 레이서이자 유능한 자동차 엔지니어 캐럴 셸비(맷 데이먼)와 또 다른 레이서 켄 마일스(크리스천 베일)가 우승을 위해 의기투합하는 과정을 그렸다.

자동차가 총알처럼 질주하는 스포츠 경주를 소재로 한 만큼, 영화는 시종일관 내달리는 자동차의 모습과 온몸을 관통하는 격렬한 엔진 소리로 관객을 빨아들인다. 실감 나는 촬영과 박진감 넘치는 편집, 귓가를 때리는 강렬한 음향은 보는 사람도 실제로 함께 휘몰아치듯 달리는 것만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 몇몇 장면은 관람이라기보단 체험에 가깝다. 휘발유 냄새가 밀려드는 것만 같고, 심장이 함부로 뛴다. 엔진이 진동하는 소리, 브레이크 밟을 때 나는 타이어 파열음마저도 음악처럼 뜻밖의 쾌감을 선사한다.

소재로만 승부하는 영화라고 오해하면 그러나 곤란하다. 맨골드 감독은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지독한 몰입, 또한 그만큼 밀려드는 절망과 상실의 순간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영화 속 자동차는 브레이크에 불이 붙을 정도로 격렬하게 달리지만, 이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표정은 과열되지 않는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영화는 이야기를 완성해 나간다. 켄 마일스가 아들에게 "기계가 한계까지 버텨주길 바라려면 그 한계가 어디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할 때, 캐럴 셸비가 "자동차 속도가 7000rpm을 넘어서면 모든 것이 희미해진다. 그리고 결국 '난 누구인가'를 묻게 된다"고 읊조릴 때, 이 영화는 끝끝내 야심을 드러낸다. 유머감각도 잊지 않는다. 캐럴 셸비가 포드 자동차 회장인 헨리 포드 2세를 태우고 스포츠카를 몰아붙이는 장면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백미. 자동차 속도에 놀란 헨리 포드 2세가 발작적으로 울음을 터트릴 때 객석은 뒤집어진다.

맷 데이먼과 크리스천 베일은 기막힌 듀오다. 이들은 본래도 대단했지만, 이 영화를 통해 더욱 대단해질 것이다. 함께 시소 타듯, 냉·온탕을 오가듯, 두 사람이 영화의 온도를 조절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아깝지 않다. 데이먼이 유연한 변화구라면 베일은 맹렬히 꽂히는 직구다. 두 사람이 얼마나 실제 인물과 닮았는가를 확인하면 소름이 돋는다. 특히 베일은 이번에도 30㎏을 감량해가며 고집 세고 까탈스러운 마일스로 빙의했다. 인상을 쓰는 듯한 비틀린 웃음, 시비 거는 듯한 표정, 휘청대는 듯한 걸음걸이까지 실제 마일스의 그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운전대를 함부로 잡는 건 웬만하면 피했으면 한다. 돌아가는 길 자신도 모르게 과속하게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