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지금은 대구에서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딸을 키우는 나이 서른 셋의 아빠. 가사와 육아에 있어 '시대적 변화'를 가장 극심하게 겪고 있는 나의 모습이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된다' 같은 말을 종종 했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기저귀 한번 안 갈아줬는데 아이들이 다 컸더라'는 이야기를 한다. 요즘 같아선 '상상도 못 할 이야기'다. 또 내가 어릴 때 경북 지역은 '남아 선호'가 여전히 심했다. 주변에 아들을 낳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어른이 많았다. 지금 딸의 귀여운 모습을 보며 '왜 어른들은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그리 강조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회사 선배의 조언 "육아는 함께하는 것"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있던 지난봄 한 회사 선배가 '육아 비법'을 전수해줬다. 아이 셋을 키운 그의 조언은 간단했다. "육아를 도와준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아내가 육아휴직 중이더라도 육아는 '협업'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최우혁씨가 지난달 가족과 함께 집 근처 대형마트에 갔다가 찍은 사진. 최씨는 "처음에는 아기띠를 메고 다니는 게 어색했는데 이제는 익숙해졌다"며 "딸에게 좋은 아빠가 되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여름 아내는 32시간 동안 진통을 견뎌내며 딸을 낳았다. 탯줄을 자를 때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들었다. 아내와 아이에게 우선 고마웠고, 우리 부부의 모습을 조금씩 닮은 아이를 보니 정말 신기했다. 그리고 회사 선배의 조언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이 아이를 잘 기르기 위해 아내와 함께 최선을 다해야겠다.' 회사 제도상 아내가 출산하면 남편도 열흘의 유급 출산휴가를 쓸 수 있어 충분히 아내 곁을 지킬 수 있었다(최근 법 개정으로 남편의 유급 출산휴가가 3일에서 10일로 늘어났다는 기사를 봤는데, 정말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9월 백 일이 지나자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새벽에 깨는 아이 때문에 우리 부부는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어느 날은 내가 아내를 두드리면서 "은우(딸 이름)야, 괜찮아! 다시 자자"라고 잠꼬대를 했다고 한다.

가끔 퇴근을 하면서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하는 느낌일 때도 있다. 하지만 낮 동안 고생한 아내와 '근무 교대'를 하고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마냥 싫지만은 않다. 이제는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도 익숙해졌다. 아이를 혼자 씻기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 불안하고 힘들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힘들지 않은 일이 됐다. 혼자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 것도 이제는 자신 있다. 그리고 요리, 빨래, 청소 등 집안일을 분담할 때 내가 맡는 비율을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직도 '경상도 남자랑 결혼하면 고생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고정관념일 뿐이다.

◇한여름 '대프리카'에서 뭉친 가족

대구는 최근 몇 년간 뜨거운 여름 날씨 덕분에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이번 여름은 그래도 예전보다 더위가 덜했지만, 기온이 36~37도까지 오르고 습도도 높은 날에는 버티기가 쉽지 않았다. 올여름은 아이 몸에 생기는 땀띠와 전쟁을 치러야 했다. 정말 더웠던 7월 말에서 8월 초 사이 가장 고마운 존재는 '에어컨'이었다.

아이 덕분에 우리 부부는 매일 함께 지낼 수 있게 됐다. 아이를 낳기 전 아내는 대전에서, 나는 대구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주말 부부'로 지냈다. 사실 임신 기간 대전에서 혼자 지낸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면서 온 가족이 대구에 있는 집에서 함께 생활할 수 있게 됐다. 딸이 온 가족을 뭉치게 해준 효녀인 셈이다.

예전에는 '대를 잇는다'는 개념 때문에 아들을 선호했던 것 같다. 유교적 관념이 강한 경상도에선 그런 생각이 더 셌던 것 같다. 간혹 고향 어른들은 "딸이 낳는 아이는 최씨가 아니지 않으냐"고도 한다. 하지만 내 아이라서일까, 우리 딸은 너무 귀엽다. 이제는 상투적 표현이 됐지만 정말 '딸 바보'가 된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