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삼국지'를 읽으면서 제갈량이 죽는 대목에만 이르면 빌고 또 빌었다. '제발 그가 죽지 않게 해주세요!' 제갈량이 조금 더 살아 삼국을 통일하는 내용이 나오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음악가의 전기를 읽으면서 늘 안타까워한 장면은 작곡가 말러(1860~1911)의 죽음이다. 쉰하나 짧은 생을 살았던, 그러나 누구보다도 왕성하게 활동했던 말러는 한 개의 미완성 교향곡을 포함해 모두 열한 개의 교향곡을 남겼다. '아홉수'라는 말처럼 작곡가들에게는 교향곡을 작곡할 때 숫자 9를 넘어 작곡할 수 없다는 일종의 '미신'이 있다. 베토벤도 교향곡 9번 '합창'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교향곡을 작곡하지 못하고 죽었다. 물론 하이든과 모차르트처럼 9의 몇배수 교향곡을 쓴 작곡가도 있다. 하지만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 브루크너, 브람스, 시벨리우스 등 유명 작곡가 중 다수가 '마의 9번'을 넘지 못했다. 아홉 번째 교향곡으로 끝내거나 9번까지 이르지도 못한 채 명을 달리했다.
말러는 선배 작곡가들의 '저주'를 피하려고 8번 교향곡 이후 작곡한 교향곡을 9번이라 하는 대신 '대지의 노래'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나 그도 '대지의 노래' 이후 작곡에 착수한 불멸의 걸작 '교향곡 9번'을 마지막으로 10번 교향곡의 일부만 남긴 채 영면에 들었다.
말러는 '대지의 노래'와 교향곡 9번에 한 사람이 인생의 막바지에서 맞닥뜨릴 수 있을 법한 심오한 감정을 담았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떠오를 마지막 감정을 늘 그렇듯 음악은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말러가 10번 교향곡을 완성했다면 분명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를 들려주지 않았을까.
'삼국지'를 읽은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제갈량은 내 간절함과 상관없이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무렵부터다. 이제 그 간절함은 말러에게로 옮아갔다. 점점 나이 들고 그의 마지막 교향곡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수록 그의 죽음이 아쉬울 것 같다.
※12월 일사일언은 백윤학 교수를 비롯해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임경희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 김경련 2019 신춘문예 동시 당선자가 번갈아 집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