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교육
조너선 하이트 등 지음|왕수민 옮김|프시케의숲
572쪽|2만4000원
1990년대 미국에서 땅콩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어린이 비율은 1000명 중 4명이었다. 학교 급식에서 땅콩을 제외해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알레르기가 없는 아이 학부모들도 선한 마음으로 동의했다. 많은 학교가 식단에서 땅콩을 퇴출시켰다. 10년 뒤 땅콩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어린이 비율을 다시 조사했더니 1000명당 14명으로 늘었다. 아이들을 땅콩의 위험에서 지켜줬더니 오히려 알레르기에 더 취약해졌다. 그 이유를 알려주는 연구 결과가 2015년 발표됐다. 어린이를 두 집단으로 나눠 실험했더니 땅콩을 먹지 않은 아이들 가운데 17%가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땅콩을 먹은 아이들의 알레르기 반응은 3%에 불과했다. 알레르기 저항력을 키워주려면 위험을 제거할 게 아니라 위험에 노출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질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백신을 맞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심리학자인 저자 하이트는 땅콩의 역설이 정신의 저항력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한다. 오늘날 미국 젊은 세대가 호소하는 우울증과 높은 자살률은 그들이 이전 세대보다 더 큰 위험에 방치됐기 때문이 아니라 필요 이상의 보호를 받아 유약해졌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과보호는 교육에도 나쁜 영향을 끼침으로써 미국을 덜 너그러운 마음과 편협한 사고를 가진 사회로 퇴보시키고 있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곳으로 대학을 지목한다.
컬럼비아대학에는 '서양문화 및 철학 명저'라는 교양 필수 과목이 있다. 오비디우스와 호메로스, 단테 등의 저작을 공부한다. 살아가는 동안 접하게 되는 가장 난해한 질문을 붙잡고 씨름하자는 취지로 개설했다. 대부분 고전이 그렇듯 죽음이 난무하고, 소외당하거나 부당한 억압에 노출된 사람들, 부적절한 사랑 이야기가 즐비하다. 부모의 배려로 불편한 감정을 일으킬 상황을 접해보지 않고 자라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은 고전을 읽고 당황했다. 일부 학생은 이런 내용이라면 사전에 트리거 워닝(trigger warning·불편한 내용이 있을 수 있다고 미리 알려주는 것)을 해야 한다고 항의했다. 마음에 상처 입은 학생들을 위한 심리 안정 치료도 요구했다. 저자는 묻는다. 고전의 가치를 '안전 대 위험' 틀로만 해석하는 것이 온당한가. 대학이 지력을 단련하는 궁극의 체육관이라면, 정신도 육신의 근육처럼 스트레스를 줘서 손상을 가해야 크고 강해진다.
미국 캠퍼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강의 반대 시위라든가 학문적 주장을 윤리의 저울에 얹어 비난하는 태도에도 그 배경엔 낯설거나 불편한 지식과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린 마음이 있다고 지적한다. 정신적으로 과보호를 받은 결과, 논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학문적으로 시비를 따지기보다 정의롭지 못하다거나 소수자 차별이란 식으로 매도하고 낙인찍는다. 반론보다 해명을 요구하는 대학에서 학문의 자유는 쪼그라든다. 게다가 극단주의가 득세하도록 틈을 내어줌으로써 민주주의의 토대마저 갉아먹는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가정과 학교에서 전파되는 '대단한 비진실'(Great Untruth)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대단한 비진실이란 ▲고된 일을 하면 강해지는 게 아니라 약해지고(유약함의 비진실) ▲늘 자신의 느낌을 믿어야 하며(감정적 추론의 비진실) ▲삶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투쟁(우리 대 그들의 비진실)이란 세 개의 나쁜 가르침이다. 비진실에 사로잡히면 자기연민에 빠져 의지는 박약해지고, 불편함을 주는 객관적 진실보다 마음을 위로하는 주관적 감정에 매몰되고, 매사를 선과 악의 구도로 바라보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를 안전하고 무탈하게 키우고자 하는 기성세대의 선한 의도가 비진실 유포를 조장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학생들에게 해를 끼치고, 삶을 보람차게 꾸리고자 하는 이의 포부를 꺾으며, 그들을 지혜롭지 못한 상태로 추락시키는 나쁜 교육일 뿐이다.
오늘날 많은 부모와 교사가 안전을 걱정해 아이들에게서 놀이와 모험을 빼앗고, 마땅히 경험해야 할 즐거움을 제한한다. 영국의 한 초등학교는 눈싸움할 때 그 속에 돌을 감출 수 있다며 눈을 만지는 것조차 교칙으로 금지했다. 그러나 물에 손도 못 대본 아이는 인생의 바다에 빠지면 헤엄쳐 나오지 못하고 익사한다. 우리 사회가 겹쳐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