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부터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들의 건보료가 집값 급등 탓에 평균 7.6% 올랐다. 이와 별개로 내년 1월부터는 건보료율 인상에 따라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건보료가 모두 3.2% 오른다. 고령 인구가 늘어나는 데다, 정부가 MRI 건보 적용 확대, 상급 2~3인실까지 급여화 등 건보 혜택을 늘리는 '문재인 케어' 정책을 추진하면서 건보료도 비교적 큰 폭으로 오르고 있는 것이다. 일부 건보료 부담이 줄어드는 측면은 있지만 건보료 폭탄을 맞은 직장인은 물론 은퇴자, 자영업자들도 아우성이다. 또 올해 건강보험 적자가 4조1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등 건보 재정 건전성도 나빠지고 있다. 성상철 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27일 만나 이런 문제들에 대해 인터뷰했다.

―건보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예상된 적자여서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문재인 케어를 표방하며 선택진료비 폐지, MRI 등 비급여의 급격한 급여화로 예상보다 훨씬 지출이 늘어나고 있다. 올해 건보 적자가 4조원이 넘을 전망이다. 더구나 고령화로 노인 진료비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전체 진료비의 40.8%가 노인 진료비였다. 앞으로 더 늘어날 수밖에 없어 우려스럽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케어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문재인 케어, 즉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는 비급여 3800여개를 급여화하겠다는 것으로 현 정부 임기 중 30조6000억원이 드는 정책이다. 정부는 건보료를 매년 3% 정도 올리고, 그동안 쌓아놓은 건강보험 누적 흑자 21조원 중 10조원을 쓰면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성상철 전 이사장은 2017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정부의 재원 조달 방안에 대해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금 건보 보장성 확대의 방향은 맞나?

"보장성을 확대하는 것은 국민에게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선순위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지금 중환자실, 외과 수술, 소아 심장수술처럼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 의료는 의사도 없고 수가도 제대로 쳐주지 않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MRI 확대, 2인실까지 급여 확대 등이 필수 의료보다 우선순위인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병원들의 의료 수가가 원가의 80% 수준이라는 것은 데이터로 다 나와 있다. 적정 수가를 보장하는 것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성상철 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지난 27일 본지 인터뷰에서 “우리 세대 때문에 미래 세대가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은 후손에게 할 일이 아니다”라며 “문재인 케어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등 이른바 '빅5' 병원은 환자가 몰려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는 반면 중소병원은 환자가 줄고 의료진도 못 구해 난리라는데.

"상급종합병원 진입 장벽이 낮아져 작은 병원이나 큰 병원이나 비용이 비슷해졌다. 환자들 처지에서는 큰 병원에 안 갈 이유가 없는 구조다. 그러니 큰 병원은 환자가 넘쳐나고 1~2차 의료기관은 환자가 더 줄어드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정부는 2022년까지 건보 보장률(전체 의료비에서 건보가 부담해주는 비율. 2017년 현재 62.7%)을 70%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인데.

"쉽지 않을 것이다. 갈 길이 멀고 난관이 많다. 특히 노인 진료비가 빠르게 증가하고 끊임없이 비급여가 생겨나니 따라잡기가 어렵다.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재직 중 건보료 부과체계가 개편(2017년 10월)됐는데, 지역가입자를 중심으로 여전히 불만이 많은 것 같다.

"부과체계 개편 이후 2018년 상반기 잠깐 민원이 줄었다가 재산이나 소득이 좀 있는 사람들을 피부양자에서 제외하면서 다시 민원이 폭발하고 있다고 들었다. 특히 연금으로 살아가는 노년층, 집 한 채와 중고 자동차 한 대로 살아가는 노년층이 재산 공시가격이 오르면서 건보료도 올라 불만이 많은 것 같다. 2017년 부과체계 개편에서도 재산 부과 보험료를 일부 완화했지만 좀 더 하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소득파악률도 높아진 만큼 결국 소득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 재산에 보험료를 부과하는 나라는 우리와 일본밖에 없다."

―다른 복지정책 속도는 어떤가.

"우리 세대를 포함해 요즘 세대들이 이대로 가면 어떤 미래가 올지 너무 인식을 못 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제가 듣기로는 국민연금 개혁을 미룬다는데 이는 다음 세대에 빚을 지우는 것이다. 또 혈세로 지원받는 사람이 너무 많다. 과다 지출하는 건강보험이라든지, 퍼주기식 복지 등에 물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대로 가면 우리 후손들이 얼마나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는지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많은 남미, 유럽 국가 등이 과다한 복지로 파산하는 것을 자주 봐오지 않았나.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데, 우리도 그런 조짐을 보여 걱정이다. 그런 부분에 대한 사회적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국유헬스협회장도 지냈는데, 원격의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유난히 우리나라에 규제가 많은데 좀 풀어줄 필요가 있다. 원격의료를 하면 많이 편리한 분야가 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도서벽지, 교정기관 등 대면 진료가 어려운 경우를 위해서도 시범 사업을 더 확대해나갈 필요가 있다. 지금도 하고 있지만 충분치 못하다. 환자도 편리하고, 의료인은 더 중증 환자에게 전념할 수 있는 등 이득이 분명히 있다. 그걸 확대하면 건강보험도 절약할 수 있다."

―해외로 진출하는 의료기관이 많다.

"지금 우리 의료계에는 우수한 인력이 많다. 우리 의료 역량으로 눈을 해외로 돌리면 블루오션을 선점할 기회가 많다. 의료계가 노력해야겠지만 정부도 규제를 많이 줄여주고 지원해주면 대한민국 의료가 해외로 나가 차세대 국가 사업을 키울 수 있다."

"50년 노하우 쌓은 의사와 신출내기가 같은 진료비… 이건 정의롭지 않다"

"선택진료비 폐지는 잘못… 혜택받는 만큼 부담해야"

성상철 전 건보공단 이사장은 "문재인 케어에 정의롭지 못한 부분이 있다"며 선택진료비 폐지와 2~3인실 상급 병실료 급여화를 들었다. 선택진료는 특정한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경우 항목에 따라 약 15~50%의 추가 비용을 부담하는 제도였는데, 정부는 지난해부터 문재인 케어의 하나로 이 제도를 전면 폐지했다.

성 전 이사장은 "수혜자가 혜택을 받은 만큼 부담을 하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 아니냐"며 "선택진료도 명의(名醫)로부터 좋은 치료를 받는다면 그에 맞는 부담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50년 가까이 의사로 경험과 노하우를 쌓은 자신과 신출내기 의사 진료에 일률적으로 같은 수가를 적용하는 것이 맞는 거냐고 반문했다.

성 전 이사장은 "외국의 경우 의사의 지적 재산에, 신의료 기술을 연마하거나 환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의사에게는 응분의 대가를 지급하고 있다"며 "미국은 경험 많은 의사에 대한 보상이 좀 과중한 측면이 있을 정도이고, 독일도 선택진료제를 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열심히 신의료기술을 개발하고 환자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의사는 거기에 따른 대가가 따라야 사회가 발전하고 의료도 발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 전 이사장은 2~3인실 문제도 마찬가지로 좋은 병실을 쓰면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맞는다고 했다.

성 전 이사장은 지난해 2월부터 분당척병원에서 명예원장으로 진료를 보고 있다. 그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소감을 묻자 "정형외과를 보니 아무래도 노인 환자가 많은데 현장에서 노인 의료비 증가를 실감하고 있다"며 "똑같은 질환을 갖고 여러 의료기관을 전전하는 환자가 적지 않아 의료기관 과다 이용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성상철은…

성상철(成相哲·71) 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서울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 원장, 대한병원협회장, 정형외과학회 이사장 등을 지낸 의료계 원로다. 2014년 12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건보공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재임 중 건보료 부과 체계 개편이 더디자 "표만 의식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정부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정형외과 전문의로, 현재 분당척병원 명예원장으로 환자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