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 시각)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는 홍콩 관련 법안에 서명했다. ‘내정 간섭’이라는 중국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린 결단인만큼 미·중 무역 협상을 앞두고 홍콩 문제를 둘러싼 두 나라 사이 갈등은 한층 더 격렬해질 전망이다.

백악관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주 의회를 통과한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는 법률 입법안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이 법안은 대통령 서명을 마친 즉시 법률로 발효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홍콩 사람들을 존중해 이 법안에 서명했다"며 "중국 지도부와 홍콩 대표가 서로 차이를 깨닫고, 불거진 문제점을 해결해 장기적인 평화와 번영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서명한 법안은 홍콩보호법과 홍콩인권법 총 2건이다. 홍콩보호법은 최루탄·고무탄·전기충격기·분사액체 등 집회·군중을 통제 및 진압하기 위한 일체의 장비를 홍콩에 수출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번 홍콩 시위사태에 대한 중국 정부와 홍콩 치안 당국의 강경 진압을 직접 겨냥한 셈이다.

또 다른 법안인 홍콩인권법은 홍콩이 누려온 ‘고도의 자치’ 수준을 미국 행정부가 1년에 한번 이상 직접 평가한 뒤 홍콩에 부여해온 경제·통상 특별지위를 중단할지 결정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해당 법률에 따라 앞으로 미국 행정부는 매년 홍콩 인권 상황을 평가해 의회에 보고하고, 대통령은 이 내용을 바탕으로 홍콩에 대한 우대 혜택을 유지할지 판단해야 한다. 홍콩의 자유를 억압하는데 책임이 있는 인물은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제재를 가할 수도 있다.

법안을 뜯어보면 "2020년까지 행정장관 및 입법의원에 대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제도 마련을 지지한다"고 시한까지 못박았다. 금융·무역·항운 중심인 홍콩을 발판 삼아 미국 경제 제재를 피하려고 하던 중국의 전략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까지만 해도 홍콩인권법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무역협상 상대인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 홍콩인권법안을 놓고 심사숙고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

그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홍콩인권법에 서명할 것이냐는 질문에 "여러분이 알다시피 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며 "협상은 아주 잘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는 홍콩에서도 일이 잘 진행될지 지켜볼 것"이라며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지난달 홍콩섬 센트럴 지역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미국의 지지를 기원하며 성조기와 함께 홍콩기를 흔들고 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이 대통령의 거부권이 무의미할 정도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의회를 통과한 점, 미국 시민들이 보편적으로 중요시하는 가치인 민주와 자유라는 기본 체제에 대한 점임을 고려해 추수감사절 직전 서명을 결심한 것으로 분석된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해당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면 미국 의회는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법안을 재의결할 수 있었다. 이 경우 대통령은 더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고 법안은 법률로 확정된다.

하지만 이 법안이 지난 20일 미국 상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한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추후 법률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홍콩 관련 법안을 주도적으로 발의한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 소식에 "지난 주말 기록적인 투표율을 보여준 홍콩 주민들의 자유 의지를 미국이 강하게 지지한다는 뜻을 보여줄 수 있었다"며 "미국은 홍콩의 자유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중국 정부의 행위를 막을만한 새롭고 의미있는 수단을 얻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서명으로 타결을 앞둔 듯 보였던 미·중 무역 협상은 다시 혼돈에 빠지게 될 모양새다. 중국은 미국의 홍콩 문제 거론에 대해 ‘내정 간섭’이라며 줄곧 강한 거부감을 보여 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의 법안 서명은 시 주석이 무역 합의에 서명하는 것을 정치적으로 힘들게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