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압수수색 일정·대상 등 靑 보고" 진술·증거 확보
압수수색 등 수사상황 유출은 공무상비밀누설죄에 해당
직권남용·공직선거법 위반 등 청와대로 수사 확대될 듯

검찰은 지방선거를 석 달 앞둔 2018년 3월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 비서실 등을 압수 수색했던 경찰이 ‘압수 수색 계획’을 사전에 청와대에 보고한 단서를 잡고 수사 중인 것으로 27일 알려졌다. 김 시장에 대한 비리 첩보가 청와대에서 경찰청을 통해 울산경찰에 내려간 것으로 드러난데다, 청와대가 압수 수색 계획 등 수사상황 보고까지 받았다면 관련자들은 ‘하명(下命) 수사'에 따른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 소속 김기현 전 울산시장이 27일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 권력기관이 개입해 자신을 낙선시켰다는 의혹을 밝히기 위해 국회 정론관에 들어서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 김태은)는 지난 2018년 3월 16일 울산경찰이 김 시장 측근 비리 의혹과 관련해 김 시장 비서실 등 5곳을 압수 수색하기 전, 경찰청이 이 사건에 대한 압수 수색 계획을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고했다는 관련자 진술과 증거를 확보했다. 이 보고 내용 안에는 압수 수색 일정과 대상, 범위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압수 수색 계획을 사전에 알려주는 것은 공무상비밀누설에 해당되는 명백한 불법이다. 경찰에 보고를 요구하는 등 수사에 관여했으면 청와대 관계자들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 특히 이 사건은 ‘선거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만큼 전·현직 청와대 인사들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까지 수사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대검찰청은 최근 울산지검이 수사 중이던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현 대전경찰청장)에 대한 고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재배당했다. 검찰은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경찰청, 울산경찰청으로 이어지는 첩보 하달과 수사 상황 보고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울산지검의 수사기록에 대한 검토가 끝나는 대로 관련자들을 차례로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경찰청 수사국 관계자는 "울산경찰이 압수 수색을 들어가기 50분 전에 경찰청에 보고가 됐다"며 "청와대에 사전 보고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압수 수색 후 언론 보도가 나온 뒤 청와대에 관련 보고를 했다"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은 이날 하명 수사 논란에 대해 "김 전 시장 관련 비위 혐의에 대해 청와대의 하명 수사가 있었다는 언론보도는 사실 무근"이라며 "청와대는 개별 사안에 대해 하명수사를 지시한 바가 없다"고 했다. 또 "청와대는 비위 혐의에 대한 첩보가 접수되면, 정상적 절차에 따라 이를 관련 기관에 이관한다"며 "당연한 절차를 두고 마치 하명수사가 있었던 것처럼 보도하는 것에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27일 김기현 전 울산시장 수사와 관련해 기자들과 만난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

고발된 당사자인 황 청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울산경찰은 경찰청 본청으로부터 첩보를 하달받았을 뿐, 그 첩보의 원천이 어디인지, 첩보의 생산 경위가 어떠한지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또 "하달된 첩보의 내용은 김기현 전 시장 비서실장의 각종 토착비리에 관한 첩보"라며 "여러 범죄 첩보 중 내사 결과 혐의가 확인된 사안에 대해서만 절차대로 일체의 정치적 고려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를 진행했고, 기소하기에 충분하다는 판단하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것 뿐"이라고 했다.

김기현 전 시장에 대한 경찰 수사는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작됐고, 경찰의 압수 수색 당일 김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울산시장 후보로 확정됐다. 선거기간 내내 수사는 진행됐고, 김 전 시장은 결국 떨어졌다. 김 전 시장을 누르고 당선된 새 시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친구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송철호 후보였다. 경찰과 함께 ‘선거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당시 책임자는 조국 전 법무장관이었다. 그는 2012년 총선 때 송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