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미 백악관에서 있었던 미국과 터키의 정상회담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다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에르도안의 비위를 맞추느라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독재자 앞에만 서면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이는 행태가 반복돼 나타나는 것이다.
터키는 나토(NATO) 동맹국이면서도 러시아산(産) S-400 지대공 미사일 구입을 강행하고, 미군이 시리아에서 철수하자 바로 시리아 북부를 침공해 쿠르드족 민병대 소탕에 나서, 그 어느 때보다도 미 의회와 워싱턴 정가에선 반(反)에르도안 여론이 높았다. 민주·공화 양당 하원의원 17명은 에르도안의 백악관 초청을 취소하라는 서한을 트럼프에게 보내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정상회담에 트럼프는 터키가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미국의 제재가 불가피하다는 미 의회의 강경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 터키에 비판적인 5명의 공화당 상원의원을 배석시켰다. 그러나 에르도안은 거침이 없었다. 오히려 이들에게 쿠르드족 민병대가 터키에서 저지른 만행을 담은 동영상을 아이패드로 보여주며 터키의 쿠르드 침공을 정당화했다. 이를 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만이 에르도안에게 "쿠르드족에게도 당신들이 한 짓을 영상으로 만들어 보라고 할까요?"라고 쏘아붙였다.
에르도안은 트럼프와 합동 기자회견에선, 트럼프가 최근 두 차례 통화하며 칭송했던 시리아의 쿠르드족 민병대 지도자인 마즐룸 코바니 압디 장군을 대놓고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며 "이런 자를 미국이 환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보낸 친서를 "(미국에) 반송했다"는 사실까지 밝혔다. 지난달 초 쿠르드족을 공격한 터키에 경고하며 '터프 가이나 바보가 되지 말라'고 써서 보낸 트럼프의 친서를 돌려보냈다는 것으로, 미국 정상에 대한 외교적 결례를 서슴지 않은 것이다. 에르도안은 귀국길에선 터키 언론에 "백악관은 편지를 돌려받고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며, 사실상 트럼프를 모욕하기까지 했다. 터키의 친(親)정부 신문들은 14일 "에르도안이 편지 주인에게 직접 손으로 되돌려줬다"는 제목으로 1면에 이를 크게 게재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에르도안을 "매우 존중하는 오랜 친구" "에르도안 대통령의 빅 팬(big fan)"이라며 유화적 발언으로 일관했다. 터키의 S-400 미사일 구입에 대해서도 "안보에 매우 심각한 도전"이라면서도 "터키를 비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정상의 이번 만남을 놓고,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는 달리, 트럼프가 아무 대가도 없이 독재자 에르도안에게 구애(求愛)해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비판했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아레츠는 "트럼프의 완벽한 항복"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