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23) 9단의 국내 프로 기사 랭킹은 367명 중 25위이고, 여성만 따지면 71개월째 1위를 질주 중이다. 양대 여성 타이틀(여류국수·여자기성)을 독점하고 있는 그는 최근 세계 여자 대회인 궁륭산배 3연패도 달성했다. 이름 앞에 여제(女帝)란 수식어가 붙기 시작한 최정을 지난주 한국기원서 만났다.

'세계 바둑 여제(女帝)'로 발돋움 중인 최정 9단. 그는 "루이 9단과의 비교는 언감생심"이라며 겸손하면서도 남녀 혼성 국제 대회 우승을 향한 야망은 감추지 않았다.

―여성 바둑계를 석권할 기세다. 이달 말 속개되는 우칭위안배도 4강에 올라 있다.

"리허와의 준결승서 이기면 루이나이웨이(芮乃偉·56) 대 왕천싱전 승자와 우칭위안배 결승전을 치르게 되는데 쉬운 상대들이 아니에요. 그래도 내년 열릴 센코배까지 3대 국제 여성 기전 동시 제패에는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한때 천적이던 중국 위즈잉을 궁륭산배서 또 꺾고 6연승, 기어이 17승 17패를 만들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위즈잉에게 당할 때마다 많이 좌절했죠. 올해 초 우연히 책 한 권을 읽은 뒤부터 조금씩 따라잡았어요. 러시아의 바딤 젤란드란 물리학자가 쓴 '리얼리티 트랜서핑'이란 책인데 '성취를 위해 억지로 애쓰지 말고 즐기면서 선택하라'는 구절에 꽂혔어요. 기술적으론 인공지능(AI) 덕에 약점이던 포석을 많이 보강했습니다. 대략 3집 반 정도쯤 늘었다고 생각해요."

―세계 여자 바둑의 미래 판도는 어떻게 흘러갈까.

"궁륭산배 결승 상대였던 저우훙위는 아직 17세인데 재주와 열정을 겸비해 대성할 것 같아요. 특히 포석 감각이 뛰어납니다. 또 12세 우이밍, 10세 스미레 등 중·일 여성 최연소 기사들도 성장이 빨라요. 긴장해야죠."

―루이나이웨이 9단과 비교 논쟁이 종종 벌어지는데….

"루이 사범님은 남녀가 함께 겨루는 혼성 기전서 남자 강호들을 펑펑 꺾고 2번이나 우승하신 분입니다. 혼성 기전 4강 1회(9월 참저축은행배)가 고작인 저하곤 비교가 안 되죠."

―하지만 루이 상대 전적은 4승 3패로 앞서 있다.

"전성 시기가 달라 평면 비교는 무의미해요. 무조건 저보다 훌륭한 선배님이시죠. 그분을 롤모델 삼아 평생 존경하며 살아왔습니다."

―최 9단은 여자 기사들에게 317승 72패로 압도적이고, 남자 상대 전적도 161승 145패로 승률 5할이 넘는다. 남자와 대국 때 특히 맹렬한 투지를 발산한다. 혹시 여권(女權)주의 차원인가.

"그런 것과는 무관하고, 같은 승부사인데 남녀가 구분되고 여성이 열세 집단으로 취급받는 현실을 깨고 싶을 뿐이에요. 제 최종 목표는 아직 아무도 못 이룬 혼성 세계 메이저 대회 우승입니다."

―지금까지 둔 바둑 중 가장 자랑스러운 두 판을 꼽는다면?

"지난봄 제24회 LG배 구쯔하오와 벌인 통합 예선, 그리고 본선 32강전서 스웨를 이긴 판이 뿌듯해요. 둘 모두 세계 메이저 우승자죠. 중국 1인자 커제와도 겨뤄보고 싶습니다." (최정은 지난 주말 바둑리그에서 역시 세계 메이저 우승자인 강동윤도 꺾었다.)

―올해 100판 돌파가 유력하다(11일 현재 85국). 최다 대국, 최다승 모두 1위인데 체력적으로 괜찮은가.

"강행군할 때는 힘들다는 느낌을 갖기도 합니다. 그동안 필라테스에만 의존해 왔는데 등산 등 운동량을 늘릴 생각이에요."

―프로 기사 생활 꼭 10년이다. 앞으로 10년을 향한 각오는?

"승패에 연연하지 말자고 매번 다짐합니다. 진 판에서 이겼을 때보다 더 많은 자양분을 얻을 수 있어요. 항상 객관적으로 나를 보는 자세를 유지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