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동시 방한한 미 국무부의 키스 크라크 경제차관, 데이비드 스틸웰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제임스 드하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 대표 등은 7일에도 방위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인도·태평양 전략이란 3가지 분야에서 전방위 압박을 이어갔다.

드하트 대표는 이날도 정치권 인사 등을 만나 '방위비 여론전'을 벌였다. 그는 기존 분담금의 5배에 달하는 5조8000억원대(약 50억달러)의 분담금을 한국에 요구한 근거를 설명하며 "호르무즈 해협, 믈라카 해협까지 한국을 위해 활동하는 미군도 있지 않으냐"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측이 방위비 협상과 호르무즈 파병 요구 등을 연계해서 생각하고 있다는 관측을 뒷받침하는 발언이다. 드하트 대표는 '신속성'을 강조하며 협상의 속도 측면도 압박했다.

이태호(왼쪽에서 둘째) 외교부 2차관과 키스 크라크(왼쪽에서 셋째) 미국 국무부 경제차관이 7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3차 한·미 민관합동 경제포럼 개회식에서 나란히 앉아 있다.

이날 드하트 대표를 만난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제2정책조정위원장은 본지 통화에서 "드하트 대표가 '트럼프 대통령이 신속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협상하라고 했다'고 말했다"며 "'상부에서 매일 얼마나 진전됐냐고 계속 확인하고 있어 스트레스가 크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민 위원장이 '현행 SMA 협정상 한국은 ▲인건비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 등 세 범주의 비용을 분담하게 돼 있는데 창의적인 것이 뭐냐'고 묻자, 드하트 대표는 "제4의 범주를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추가 항목 신설을 요구한 것이다.

드하트 대표를 만난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드하트가 제4의 범주에 대해 자세한 설명은 안 했지만, '호르무즈 해협, 믈라카 해협까지 한국을 위해 활동하는 미군도 있지 않으냐'는 얘기까지 하더라"고 말했다. "창의적인 부분에 주한미군 외 한반도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다른 비용도 포함되는 것 같다"고도 했다. 이와 관련해 방위비 협상에 정통한 정부 소식통은 "호르무즈 해협 등에 있는 미군을 위한 비용까지 요구한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했다. 미국 측이 직접적 방위비 분담 대상으로 요구한 '한반도 외 비용'은 주로 주한미군의 순환배치나 연합훈련에 관련된 것이란 얘기다. 주한미군 중 지상군 1개 여단과 일부 전투기 대대는 6~9개월 주기로 미 본토에 있는 병력과 순환배치된다. 미국 측은 현재 한국에 주둔 중이 아니지만 미래의 순환배치 대상이거나 연합훈련 참가 대상인 부대의 인적·물적 자산과 관련해 발생하는 비용 분담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호르무즈·믈라카 해협이 거론된 것은 '방위비 분담에 직접 관련된 SMA 협상'과 'SMA와는 무관한 별도의 동맹 역할·비용 분담에 관한 장외(場外) 협상'이 투트랙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23일 종료되는 지소미아 연장 여부가 방위비 협상에도 영향을 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 6일 스틸웰 차관보를 접촉한 우리 측 인사는 "방위비 협상에 대한 우려를 말하자 스틸웰 차관보가 '지소미아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며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를 최종 파기하면 방위비 협상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방한 삼인방'을 다 만났던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도 7일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제가 느낀 미국 입장은 실망스러운 분위기였다"며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은 청와대와 정부의 결단"이라 말했다. 이날 랜들 슈라이버 미 국방부 인도·태평양 안보 담당 차관보도 NHK 인터뷰에서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재고할 수 있는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 한국에 지소미아에 머물도록 설득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인도·태평양 전략에서도 미국은 '비용 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크라크 경제차관은 이날 열린 한·미 민관합동 경제포럼에서 "수조달러의 인프라 투자가 있어야 (인도·태평양 지역의) 인프라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며 "한국과 같은 생산적인 기업이 일자리 창출과 번영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추진을 위해 거액의 인프라 투자를 해주길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