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엔 긴장이 감돌았다. 감독도 선수단도, 팬들까지도 모두가 당황한 기색이었다. 지난 26일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4차전 연장 10회말, 김태형 두산 감독이 한 이닝 마운드 방문 횟수를 착각해 내야로 들어서면서 계획에 없던 투수 교체가 이뤄졌다. 11―9로 앞서고 있었고 주자는 없었지만 아웃카운트 두 개를 더 잡아내야 했다.
단 한 사람, 다음 투수 배영수(38)만이 눈치 없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더그아웃을 뛰어나왔다. 그는 "형 믿어"라며 후배 투수 이용찬을 안심시킨 뒤 키움 박병호를 삼진, 제리 샌즈를 땅볼로 잡고 우승을 확정했다. 역대 한국시리즈 최다인 25번째 등판을 끝으로 그는 현역 마운드에서 내려온다. 배영수는 29일 "20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전화 통화에서 올 한국시리즈에 앞서 이미 은퇴를 결심했다고 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짓는 마지막 투수가 꼭 되고 싶었는데, 은퇴를 앞두고 바라던 모든 게 거짓말처럼 다 이뤄졌다"며 "하늘에 계신 할머니께서 도와주신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10세 때 친구 따라 야구 방망이를 잡고 유격수 꿈을 키우던 배영수는 경북고 1학년이던 1997년 처음 투수 글러브를 꼈다. 당시 현역 선수로서 모교를 찾은 류중일 현 LG 감독이 그의 플레이를 보고선 "야, 너는 유격수 말고 투수 해라"라고 했다고 한다.
2000년 삼성 유니폼을 입고 이듬해 13승 8패를 올리며 주축 투수로 자리 잡았다. 2004년 리그 최다인 17승(2패)에 평균자책점 2.61을 기록해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삼성에서 7차례 우승을 이끌며 '푸른 피의 에이스'로 불렸다. 2014년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어 한화로 이적했고, 올해 두산에서 구원투수로 뛰었다. 통산 성적은 499경기 138승 122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4.46. 앞서 은퇴한 송진우(210승), 정민철(161승), 이강철(152승), 선동열(146승)에 이어 역대 다승 5위다. 2006년 태극 마크를 달고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나섰다.
그의 야구 인생은 마치 치열한 9회 정규 이닝을 끝내고, 극적으로 들어선 연장 승부서 멋지게 마침표를 찍은 올 한국시리즈 4차전과 닮았다. 전성기에 최고 시속 150㎞를 넘나드는 빠른 직구와 예리한 슬라이더로 리그 정상급 우완 투수 반열에 올랐지만, 2007년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이후 구속이 떨어지며 위력을 잃었다. 2009년에는 1승 12패에 그치며 이른 나이에 은퇴 기로에 서기도 했다. 구속은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지만 체인지업과 투심패스트볼 등 구종을 늘리고 노련한 경기 운용을 익히며 살아남았다. 2013년(14승 4패)에도 다승 1위에 올랐다. 작년 한화에서 2승3패 평균자책점 6.63으로 시즌을 마친 뒤엔 은퇴를 제안받았지만 고사하고 두산에서 마지막을 불살랐다. 배영수는 "정말 끝내기 싫었을 때 다시 야구할 기회를 준 김성근, 김태형 두 감독님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전까지는 아내와 두 딸, 24개월 난 아들과 푹 쉴 생각이다. "그동안 못 봤던 책도 실컷 읽고 싶다"고 했다. 마운드에는 미련이 없지만 하나 바라는 건 있다. 그는 "끝까지 포기를 몰랐던 '투지의 배영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