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인 2015년 대선에서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포퓰리즘에서 나라를 해방시키겠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정부 예산 19%를 서민 생활 보조금으로 쏟아붓고, 공무원 숫자와 연금 수령자는 왕창 늘려 경제를 망가뜨린 정부에 신물난 아르헨티나 국민은 마크리를 택했다.

마크리 정부는 공공요금 보조금을 줄이고, 연금 수령 기준을 까다롭게 하고, 비대해진 공공조직 축소를 시도했다. 세금 보조금이 줄어들자 치솟는 생활비에 아르헨티나 국민은 분노했고, 공무원들은 자신이 해고될까 시위대로 변신했다. 결국 아르헨티나 국민은 27일(현지 시각) 실시된 대선에서 좌파 포퓰리즘 정권 밑으로 다시 돌아가길 선택했다. 포퓰리즘의 단맛에 중독되면 얼마나 끊기 어려운지 아르헨티나 대선 결과가 극명하게 보여준다.

27일(현지 시각) 실시된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승리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앞줄 오른쪽) 후보와 그의 부통령 러닝메이트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키르치네르(앞줄 왼쪽) 후보가 부에노스아이레스 당사에서 당선을 자축하고 있다. 이로써 아르헨티나 정권은 4년 만에 좌파 포퓰리즘 정권으로 회귀했다. 전임 대통령이었던 크리스티나는 이번엔 부통령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전임자가 놓은 포퓰리즘의 덫

마크리의 전임자였던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부부는 각각 대통령으로 총 12년간 집권했다. 이 부부는 국영화, 복지 확대 등 후안 페론 전 대통령과 부인 에바 페론이 실행한 아르헨티나식 포퓰리즘인 '페론주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했다.

남편 키르치네르는 외국 자본으로부터 자립하는 경제를 만들겠다며 취임 첫해인 2003년 민간 기업이 운영하던 우체국 서비스를 국영화했다. 2004년 철도, 2006년 상하수도, 2008년 항공사까지 국영화에 박차를 가했다. 키르치네르의 재임 4년간 민간산업은 활력을 잃고, 공기업은 비대하고 부패했다.

남편 뒤를 이어 8년간 대통령을 한 크리스티나 정권 하에서 포퓰리즘 기조는 더 강해졌다. 공무원 수를 약 2배로 늘렸고, 연금 지급 조건을 완화해 2005년 360만명이던 연금 수급자가 크리스티나 퇴임 해인 2016년엔 800만 명으로 불었다. 공립학교 학생들에게 500만대의 공짜 노트북을 뿌렸고, 축구광이 많은 국민을 의식해 TV 축구 방송 중계료 지원에 세금을 썼다.

세금 정책을 위해 크리스티나는 돈을 찍어 페소화 공급을 늘렸고, 인플레이션은 악화됐다. 대가는 최악의 경제 위기였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부부 대통령 집권 기간 아르헨티나의 정부 공공 비용 지출은 GDP 대비 23%에서 41%까지 솟았다. 2011년 2054억달러였던 아르헨티나의 국가부채는 2016년엔 2955억달러로 수직 상승했다.

◇긴축 피로감에 포퓰리즘 회귀

파탄난 경제를 물려받은 마크리 대통령은 재정 긴축을 시도했지만 역풍이 그치지 않았다. GDP 대비 4%에 이르던 에너지·교통 보조금을 2.5%대로 줄이자 서민 살림살이는 팍팍해졌고, 소비는 둔화했다. 성장은 멎었고, 작년엔 IMF 역대 최고액인 560억달러(약 66조원)의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다. 구제금융 조건을 맞추기 위해 긴축을 강화할 수밖에 없어 국민 사이에서 마크리 정권에 대한 반감이 커져갔다.

페르난데스 당선자는 긴축 완화, 복지 확대 등 포퓰리즘 정책으로 이 상황을 재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법학 교수 출신인 그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과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 정권에서 총리직을 지냈다.

한때 상관이었던 크리스티나 전 대통령이 이번엔 페르난데스 당선자의 러닝 메이트로 출마해 포퓰리즘을 그리워하는 민심을 부채질했다. 포린폴리시는 "전임자의 빚을 물려받은 마크리는 재앙을 맞을 운명이었다"며 "정부 재정 지출을 줄이려 했다가 실패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 했지만 결국 마크리도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대선 결과 잠정 발표 직후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긴급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외환시장 통제 조치에 들어갔다. 개인이 현금으로 매입할 수 있는 미국 달러 한도를 월 100달러 이내로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달러가 썰물처럼 빠져나가 가뜩이나 바닥인 외환보유액을 거덜내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페르난데스 당선자는 경제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서 산더미 같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며 "전문가들은 경제 혼란이 과거 페론주의 정부들의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