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정권이 4년 만에 다시 우파에서 좌파로 바뀌었다.

아르헨티나 언론은 27일(현지 시각) 일제히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좌파 포퓰리즘(populism) 성향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가 마우리시오 마크리 현(現) 대통령을 꺾고 당선됐다고 밝혔다.

중도좌파연합 ‘모두의 전선’ 페르난데스 후보는 개표가 91%가량 진행된 현지 시각 27일 오후 11시 기준 47.9%를 득표했다. 중도우파연합 ‘변화를 위해 함께’의 후보로 나서 연임에 도전한 마크리 대통령은 40.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아직 개표가 9%가량 남았지만 아르헨티나 주요 일간지 클라린과 라나시온은 모두 페르난데스 후보를 ‘당선인’으로 표기했다.

아르헨티나 대선에서는 1차 투표에서 한 후보가 45% 이상을 득표하거나, 40% 이상을 득표하고 2위에 10%포인트 이상 앞서면 결선 없이 당선을 확정한다. 이로써 아르헨티나는 4년 만에 다시 우파에서 좌파로 정권이 교체됐다.

중도좌파연합 ‘모두의 전선’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가 27일 투표를 마친 후 지지자들을 향해 승리의 표시를 흔들어 보이고 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 당선인은 극렬한 ‘페론주의(복지를 강조하는 아르헨티나의 국가사회주의)’ 지지자다. 페론주의는 일종의 아르헨티나식 사회민주주의로, 1947년 정의당을 만든 후안 도밍고 페론(1895~1974) 아르헨티나 전 대통령과 뮤지컬 ‘에비타’의 주인공인 그의 아내 에바 페론으로부터 시작됐다.

친(親)노동정책과 저소득층 복지정책, 외세 불개입 등을 주 내용으로 하며 현대 좌파 포퓰리즘의 원조라는 평가를 받는다. 외국 자본을 추방하고 철도·전화 등 기간산업을 국유화, 빈곤층 중심의 분배 우선 정책이 페론주의의 뼈대다.

에바 페론은 특히 복지 사업과 봉사활동을 벌이며 성녀(聖女)처럼 비쳤으나, 실제로는 사치가 극에 달했고 횡령한 거액의 돈을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로 옮겨놓은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빈민층은 여전히 에바를 성녀처럼 여기며 향수를 느끼고 있다. 그 여파가 이번 선거에서도 4년 만의 정권 교체로 나타난 것.

페르난데스 당선인은 정치활동이라고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의원으로 잠시 활동한 게 전부다. 별다른 정치적 배경이 없던 그를 대통령으로 이끈 인물이 바로 ‘21세기의 에바 페론’으로 불리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전 대통령이다.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 지지자들이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깃발을 흔들고 있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집권했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 페르난데스 당선인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출마했다. 대통령 재임 시절 공무원 증원, 연금 확대와 같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으로 아르헨티나의 경제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부통령으로 다시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외신들은 대통령인 페르난데스보다 부통령인 크리스티나가 실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페르난데스 당선이 세계적인 경제 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페르난데스는 ‘570억달러(약 66조원) 규모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계획을 무산시키겠다’는 공약을 들고 나왔다. 국가 부도를 막는데 쓰일 예정이었던 이 자금을 받지 않으면 아르헨티나는 2001년처럼 채무 불이행 사태와 외환위기를 반복할 수 있다. 환 보유액은 513억달러(약 60조원)에 불과하지만, 대외 부채는 2614억달러(305조원)로 5배를 넘기 때문이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는 "아르헨티나가 국가 부도 상태에 빠지면 터키·베네수엘라·파키스탄·레바논 같은 다른 신흥시장에서도 자금이 이탈하는 속도가 빨리질 것"이라며 "더 나아가 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중국·브라질·멕시코·에콰도르에도 악영향을 미치면 지난 금융위기 같은 복잡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