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단 헬 고음녀' '폭주 보컬' '고음 여신'…. 모두 작년 12월 데뷔한 신인 가수 흰(21·본명 박혜원·사진)에게 붙은 별명이다. 지난 3월 발표한 두 번째 곡 '시든 꽃에 물을 주듯'이 7개월 뒤인 지난 9월 음원 차트에서 뒤늦게 1위에 올랐다. 거미, 마마무 휘인, 소녀시대 태연 등 여가수들을 모두 제친 성적이다. '시든 꽃에 물을 주듯'이 인기를 얻은 이유 중 하나는 3옥타브 파에서 반음 더 올라가는 초고음 덕분이다.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미디어에서는 EXID 멤버 솔지부터 권인하까지 가창력에 자신 있다는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불러 올리고 있다. 가수 유희열은 방송에서 흰에게 "대한민국 톱 보컬로 불리는 네 가수 김나박이(김범수, 나얼, 박효신, 이수)를 잇는 대형 가수 느낌"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시든 꽃에 물을 주듯'이 인기를 끌자 그의 데뷔곡 '렛 미 아웃(LET ME OUT)'도 다시 관심을 끌며 음원 차트에 진입했다. 이달 17일 세 번째 곡 '막차'를 발표했다.

최근 서울 신사동에서 만난 가수 흰은 "데뷔 전까지는 가수가 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절망적인 순간들뿐이었다"고 기억했다. 흰의 실력이 처음 알려진 건 지난 2016년 방영된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였다. 가창력에서 극찬을 받으며 본선에 진출했지만 준결승에서 4위로 탈락했다. 시청자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질릴 때쯤 출연한지라 크게 이름이 알려지지도 못했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인기가 떨어지기 전에 곧바로 음반을 내거나 계약하는 경우가 보통이지만 흰은 데뷔하기까지 2년이 걸렸다. 음반 계약이 번번이 엎어졌기 때문이다. 흰은 "가수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함과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에 보컬 트레이너로 먼저 일하려고 했다"며 "맏딸이라 열 살, 여섯 살 차이 나는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과 죄책감이 컸다"고 말했다.

인천 변두리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했다. "중학교 때 버스비 1000원을 아끼려고 얇은 여름용 운동화로 발목까지 오는 눈을 헤치며 두 시간씩 걸어 등교했어요. 그땐 그게 당연했고 처량하다는 생각도 못 했지요." 자신이 힘든 건 괜찮지만 동생들에 대한 미안함은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예고에 지원하려고 원서비 5만원을 부모님께 받을 때 너무 괴로웠어요. '떨어지면 어린 동생들이 입고 먹을 것이 한순간에 날아간다'는 죄책감 때문에. 그래서 이를 악물었지요." 다행히 별다른 레슨도 받지 않고 예고와 대학(동덕여대 실용음악과)에 합격했다.

"두 시간 거리의 등하굣길 덕분에 노래를 반복해서 많이 듣게 됐다"는 그는, "가수명을 '흰'으로 지은 것도 눈밭을 거닐던 생각이 나서"라고 했다. "한강의 소설 '흰'의 한 구절도 마음에 와 닿았어요. '내가 더럽혀지더라도 청중에겐 깨끗하고 흰 목소리만 들려주겠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