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중 사회부 기자

"나 왜 이렇게 눈물 날 것 같지…."

23일 인헌고 정문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른바 '정치 교사'들을 규탄한 3학년 최모군은 기자회견이 끝나고 20분을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앞으로 겪을 풍파에 대한 두려움, 좌우 진영에서 나오는 찬반 여론에 대한 부담감, 그에 동의하지 않는 학교 측의 압박에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친여(親與) 성향 네티즌의 '댓글 테러'는 사흘째 계속되고 있다. '젊은 것이 이미 영혼을 망쳤구나' '일베를 꿈꾸는 학생'이라는 악성 모독이 쏟아지고 있다.

다양성이 미덕인 시대다. 생각과 입장은 얼마든지 엇갈릴 수 있다. 때론 서로 다른 의견이 부딪치는 과정에서 얻는 배움이 더 크다. 그렇게 논리가 견고해지고, 다른 삶과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진다. 그래서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는 영미권 국가들은 유치원부터 학부 때까지 토론을 접목한 수업을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다름'과 '틀림'을 구분해주고, 문답(問答)을 통해 학생들의 잠재력을 120% 이끌어내는 게 우리가 기대하는 선생님의 역할이다.

인헌고와 같은 혁신학교도 10년 전 이런 역할을 내걸고 도입됐다. 혁신학교 도입을 주도한 좌파 교육계는 "학생들이 체험과 토론 등에 참여해 스스로 배우는 창의적 교육"을 약속했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인헌고 학생들에 따르면, 교사가 "민주주의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제자가 "제가 노력한 만큼 되돌아오는 사회인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교사의 대답은 "속아 넘어가지 마라. 너는 아주 쓰레기 같은 답을 한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토론은 없었다.

또 다른 증언이다. 한 학생이 "석탄 사용이 줄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자 교사가 "너는 가짜 뉴스에 속고 있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원전 마피아들 편들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걸로도 부족했는지 "마피아는 우리나라 조폭 같은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였다고 한다. "우리는 자라서 진보도 보수도 될 수 있다"는 학생들에게, '좌는 착하고 우는 나쁘다'는 선입견을 주입한 것이다. 싫다는 학생들에게도 억지로 반일(反日) 구호가 적힌 어깨띠를 두르게 했다. 오죽했으면 학생들이 "우리는 정치 교사들의 정치적 시체로 전락했다"고 했을까.

결국 참다못해 수능을 3주 앞둔 고3 학생들이 "변화는 외부로부터의 압박이 있어야 일어난다"며 총대를 메고 나섰다. 3학년 김화랑군은 "앞으로 들어올 동생들과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더는 묵인·방관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학생의 기본권과 자유의 가치를 안전하게 지켜서 물려주고 싶다"고 했다. 지금 인헌고 학생들은 뒤를 밀어줄 '진짜 교사', '진짜 어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