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는 어려운 음식이다. 모르고 보면 빵 사이에 채소와 고기를 끼워 넣은 게 다인 것 같다. 하지만 똑같은 악기로 연주해도 그 결과물은 몇백 광년만큼 차이가 나는 것처럼 햄버거 역시 마찬가지다. 빵부터가 문제다. 찰기가 있어 쫀득한 식감을 살릴지, 아니면 보슬보슬하고 가벼운 식감을 고를지부터 햄버거 설계가 시작된다. 햄버거의 영혼이라 할 수 있는 고기 패티(patty)는 음식점 사장에게 '원가'라는 골칫거리를 안겨준다. 세상에 질 좋고 싼 고기는 없다. 마블링이 많고 감칠맛이 좋은 고급 부위로 햄버거를 만들면 당연히 맛이 좋다. 싼 부위에 따로 지방을 넣어 직접 갈면 어느 정도 맛을 따라잡을 수 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일 뿐이다. 고기를 굽는 그릴, 감자를 튀기는 튀김기 등 필요한 시설도 마냥 간단하지 않다. 빵과 고기를 굽고 소스를 만드는 등 필요한 기술도 다양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사람들이 햄버거에 지불하고자 하는 값은 그리 크지 않다. 싼값에 햄버거를 제공하는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기술과 자본력이 그만큼 우수하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럼에도 햄버거란 '패스트푸드'라는 대명사로 끝내고 말 음식이 아니며, 그 마음으로 햄버거를 내는 집들이 있다.
서울 청담동 등 여러 곳에 지점을 낸 '다운타우너'는 이른바 미국 교포 감성이 묻어난다. 캘리포니아에서 자주 쓰는 식재료인 아보카도를 햄버거의 중심에 꽂아 넣으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는데 그 확장성은 햄버거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햄버거 좀 먹어본 이들이 만든 가게답게 고기의 굽기나 소금 간이 한반도의 기준을 넘어선다. 고기는 살짝 덜 익히고 약간 짜게 간을 한다는 뜻이다. 빵은 적당히 보슬거리고 무수히 박힌 깨가 고소한 맛을 돋운다. 아보카도가 늘 적당히 부드럽게 숙성돼 있는 것도 이 집의 강점이다. 지금은 그 명성이 한풀 꺾여 긴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는 것 역시 고려 사항이다.
빵을 직접 만드는 성수동 '핑거팁스'는 햄버거에 필요한 기본기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꼭 모든 것을 직접 할 필요는 없다. 애플이 아이폰에 삼성 칩을 가져다 쓰는 것처럼 햄버거 빵 역시 사서 쓴다고 흠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직접 만든다면 원하는 맛을 세밀하게 설계하고 통제할 수 있다. 소비자 역시 음식에 더 믿음을 가지게 된다. 매일 아침 굽는다는 빵은 바삭하게 시작해 푹신하게 마무리된다. 빵 사이 놓인 고기와 채소 역시 씹는 순간 신선하다는 느낌이 바로 다가온다. 전체적으로 볼륨이 있는 편이라 인근 직장인들이 점심으로 자주 찾는다. 매일 꾸준히 반복하며 부지런히 살아가는 이들에게 와 닿는 음식이다.
가장 미국적인 햄버거집을 찾는다면 도곡동 '원스타 올드패션드 햄버거'를 가보자. 주택가 한가운데 자리 잡은 이 집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한밤 어두운 골목에서 환하게 불을 밝히고 사람들을 맞는다. 빨간 케첩통과 노란 머스터드(양겨자)통이 테이블마다 있고, 젊은 청년 둘은 깨끗한 주방에서 땀을 흘린다. 예스러운 고딕체가 단정히 박힌 메뉴판에 올라온 메뉴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중 소고기와 완두콩을 넣어 만든 칠리와 치즈를 올린 '칠리 치즈 프라이즈', 어릴 적 낮은 키로 땅에 서서 양손으로 붙잡고 먹던 맛이 나는 '밀크셰이크'는 일단 시키고 시작하는 편이 좋다.
버거 중에는 베이컨, 양파, 토마토 등 부재료를 꽉 채워 담은 '원스타 디럭스', 기름을 넉넉히 두른 뒤 구운 호밀 빵을 써서 거칠지만 그윽한 풍미를 내는 주말 한정판 '패티 멜트(patty melt)'가 다수의 선택이다. 그럼에도 온전히 한입에 들어오는 기본 '치즈버거'의 매력은 대체 불가하다. 첫 입은 빵과 양파가 바삭하게 씹힌다. 다시 한 번 더 햄버거를 입에 넣으면 이제는 부드러운 고기와 상큼한 피클이 넉넉히 입안을 채운다. 노란 치즈는 햄버거의 맛을 하나로 모으는 이음매 역할을 한다. 마지막 조각을 삼키고 나면 고기, 채소, 빵이 만든 꽉 찬 포만감이 밀려온다. 수줍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직원들은 성실하게 일하며 사람들을 맞는다. 허례가 없고 숨김이 없다. 햄버거란 음식이 본래 그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