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을 앓는 여성 A(37)씨는 지난 20일 저녁 7시쯤 대전 대덕구 집에서 어머니 B(65)씨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A씨를 붙잡아 일단 응급입원 처리했다. 응급입원은 경찰이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를 전문의 동의를 얻어 강제로 입원시키는 제도다. 경찰은 "A씨가 조현병 진단을 받았지만 약을 꾸준하게 먹지 않는다"는 가족 진술을 확보했다. 대덕정신건강복지센터는 "우리가 관리해온 환자는 아니었다"고 했다. 관리 사각지대에 있던 환자였던 것이다.

진주에서 조현병 환자 안인득이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빠져나오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23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이 일어난 지 여섯 달이 지났다. 친형이 여러 차례 안인득을 입원시키려 했는데도 실패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증 정신질환자 비자의(非自意·강제) 입원에 대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도 사건 직후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여섯 달이 지난 지금 현장에서는 안인득 사건 이전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는 탄식이 커지고 있다. 강제 입원 절차가 지나치게 까다로워 병원은 기피하고 경찰도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상황이 그대로라는 것이다.

◇경찰 "입원 가능한 병실 찾아 9시간"

얼마 전 수원의 한 파출소는 새벽 1시 20분쯤 한 남자가 유리창을 깨고 있다는 신고를 받았다. 경찰은 정신질환 환자로 보여 응급입원을 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인근에 입원 가능한 병실이 있다는 병원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파출소에서 9시간 정도 데리고 있다가 다음 날 아침에야 환자를 병원에 인계할 수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빈 병실이 없다' '당직의가 없다' '다른 신체 질환부터 치료해야 입원 가능하다' 같은 이유로 응급입원을 못 시키거나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하소연했다. 입원 가능한 병실을 찾아 입원시키다 보면 5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부천의 한 파출소는 지난 6월 가족들에게 "나를 찔러 달라"며 행패를 부리는 정신질환 환자를 응급입원시키느라 인근 16개 병원에 두 번씩 연락해서야 겨우 병실을 구할 수 있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특히 충남·경기 지역의 경우 관할 시도 내 모든 병원이 병실이나 의사가 없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자 관리 중 가장 시급히 해결책을 찾아야 할 문제로 보였다.

◇의사 "치료보다 서류 더 신경"

광주 북구 C(48)씨는 "머리에서 세 명의 목소리가 들린다" "말을 듣지 않아 딸을 발로 밟았다"며 중학생 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정신질환자다. 그러나 독이 들어 있다며 처방약을 먹지 않는다.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는 C씨에 대해 보호입원을 진행하고 있으나 보호자 2명의 동의를 언제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친정어머니는 연락이 닿았지만 첫 번째 남편과 낳은 아들은 십수 년 전 헤어져 연락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센터는 수소문한 끝에 아들이 다니는 대학을 알아내 연락을 시도 중이다.

현재 정신건강복지법상 환자가 거부할 경우 가족 동의로 입원하는 '보호입원' 또는 시군구 단체장 동의로 입원하는 '행정입원'으로 해야 한다. 이 중 보호입원은 직계 혈족이나 배우자 등 보호 의무자 2명 이상의 동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강제 입원 시 1개월 내에 입원적합성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심사에서 탈락하는 사유의 약 70%가 서류 미비다. 불안정한 중증 환자를 이송하고 치료하는 와중에 복잡한 가족관계 서류와 동의서 등을 챙겨야 하는 것이다. 환자나 보호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법적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의사들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치료비(수가)도 낮은 데다 누가 부담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아 못 받는 경우가 많은 것도 병원들이 강제 입원 환자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다. 조순득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회장은 "병원들이 골치 아픈 환자는 안 받겠다고 하는 것"이라며 "대놓고 '보호입원이면 안 받는다'고 말하는 병원도 많다"고 말했다. 역시 보건 당국이 서둘러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였다.

◇센터 "인력 부족해 야간·휴일엔 손놓아"

현장에서 정신질환자를 관리하고 응급 상황 발생 시 경찰과 함께 출동해 정신질환 여부 등을 판단하는 기능을 맡은 곳이 시·군·구 정신건강복지센터다. 그런데 센터는 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노정균 서울 마포 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우리의 경우 11명이 구 전체를 관할하는데 직원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휴일·야간엔 담당자를 둘 엄두를 못 내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특히 휴일·야간에 정신질환 사고가 빈번한데 연락할 곳조차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경찰과의 협조도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9월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 1년간 응급입원이 필요한데 실패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75.3%, 응급입원 시 경찰·소방의 협조가 부족하다는 응답이 47.9%에 이르렀다. 조순득 회장은 "센터가 인력에 비해 담당 환자가 너무 많아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며 "센터에 가도 색종이 접기 시키고 노래방 기기 있는 정도니 '우리가 유치원생이냐'고 가지 않는 환자가 많다"고 말했다.

안인득 사건 직후 정부는 '우선 조치 방안'이라며 응급개입팀 설치, 24시간 대응 체계 유지, 정신건강센터 인력 확충 등을 내놓았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지역 사회가 조현병 환자들을 돌보고 관리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 인권을 강조하는 쪽으로 무리하게 법을 고쳤다"고 말했다.

조현병 등 정신질환은 약을 처방대로 먹는 등 꾸준히 관리하면 별다른 증상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엉망으로 환자를 관리하면 언제 '제2의 안인득 사건'이 발생할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을 취재하는 내내 떨칠 수 없었다.

[光州 정신병원들, 밤마다 병상 2개 비워두고 의사들에 당직비… 조현병 사건 적어]

"22세 대학생이 센터에 연락해 환청과 망상에 시달리고 있다며 스스로 사례 관리를 요청했습니다. 다음 주 아버지와 함께 센터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14일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정신건강복지센터 회의실. 팀장들이 주간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20대 청년이 스스로 센터에 등록하겠다고 자청했다는 내용이 보고된 것이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그나마 정신질환자 관리가 어느 정도 되고 있는 곳으로 광주광역시를 꼽았다.

우선 광주에선 경찰이 정신질환자를 순찰차 뒷좌석에 태우고 밤새워 입원 가능한 병원을 찾아다니는 일이 없다. 광주전남 권역 정신병원들이 밤마다 병상 2개를 비워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지역에선 밤에 응급 입원에 필요한 정신과 전문의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지만 광주의 경우 밤에도 연락 가능한 당직 전문의가 정해져 있다. 의사들에게 20만원 안팎의 당직비를 지급하면서 정착시킨 시스템이다.

이처럼 경찰의 부담을 덜어주니 야간 응급 출동에 경찰이 동반하는 비율이 96%에 달한다. 광주북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최승기 팀장은 "광주는 병원·경찰·정신건강센터·주민센터 등이 주기적으로 회의하는 과정에서 응급입원이나 행정입원에 책임을 분담하면서 경찰이 부담을 덜어 협조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최 팀장은 "그 결과, 정확한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광주에서 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 사건이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광주에서 이 같은 실적이 가능한 것은 정신질환 예산이 다른 지역보다 약간 많기 때문이다. 광주의 1인당 정신보건 예산은 2017년 기준 7224원으로, 서울(4075원)의 1.7배, 전국 평균(3889원)의 1.8배 수준이다. 그렇다 보니 간호사와 사회복지사 등 정신건강 전문요원 이직도 적어 숙련도가 높다. 광주는 또 10~20대 청년을 위한 정신센터(마인드링크)를 따로 두고 정신질환의 조기 예방에도 적극적이다. 현실에 맞게 제도를 정비하고 예산을 좀 더 투입하면 광주 수준의 정신 건강 관리는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김성완 광주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 단장은 "광주도 경찰과 의견 차이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나마 다른 지역보다는 원활하게 돌아가는 편"이라며 "지역 사회가 좋은 서비스를 갖추면 당사자들이 이용하려 한다는 점, 적절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투성이인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전이라도 우선 정신질환자 관리 방식을 광주 수준으로만 끌어올려도 급한 불은 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