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군용기 6대를 동원해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뿐만 아니라 일본 방공식별구역(JADIZ·자디즈)을 무단 진입한 22일은 일본의 최대 경축일인 일왕(日王) 즉위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이는 일본에 '미국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지 말라'는 노골적 경고를 던진 것으로 해석됐다. 물론, 이는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 후보지로 거론되는 한국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는 분석이다.

공교롭게도 이날 아사히신문은 '미·일 정부가 최근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 협의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해당 방안을 놓고 일본 측과 의견 교환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에 따르면, 미군의 고위 관계자는 "미국 측 인사가 지난 18일 일본을 방문해서 방위성, 외무성, 국가안전보장국(NSS)의 고위 관계자들을 만났으며 신형 미사일 배치가 의제에 올랐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 2월 러시아가 중거리 핵전력(INF) 조약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를 파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은 동북아 지역에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추진하고 있다. 아직 배치 국가나 지역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일본과 괌 등이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일본 정부 안팎에서는 트럼프 미 행정부가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장소로 오키나와를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 한국에 배치를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면, 러시아와 중국은 동북아 내 미국 미사일 배치를 극력 반대하고 있다.

이런 정세 속에서 러시아 군용기가 카디즈와 자디즈를 동시에 진입한 것도 한·미·일 정부에 대한 '경고' 메시지일 수 있는 것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은 중국의 군사 굴기와 러시아의 팽창주의를 봉쇄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신형 미사일 배치 계획을 추진하고 동맹인 한국과 일본의 협조를 바라고 있다"면서 "중·러는 이에 강력 반발하기 때문에 미국의 미사일 배치는 향후 동북아 갈등의 새로운 불씨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준(準)군사동맹인 중국과 연합해 한·미·일 삼각 공조를 흔드는 도발 행위를 반복하고 수위도 높여갈 것이란 관측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