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수요일 출근길 도로 상황은 딱 내 마음 같다. 주말의 여운은 온데간데없고 슬슬 밀려오는 피로감으로 온통 뒤엉켜 있는 자동차들. 아슬아슬 곡예하듯 운전하고 있노라면 '오늘도 이 지뢰밭을 무사히 지나가야 할 텐데'란 기도가 절로 나온다.

이제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회사 주차장까지 남은 마지막 고비는 좌회전 신호 한 번뿐. 꼬리를 문 긴 차량 행렬의 선두에 서 있으려니 신호가 바뀌자마자 저들을 물 흐르듯 이끌어 나가리라 비장한 각오마저 든다.

좌회전 화살표 신호를 보고 서서히 운전대를 돌린다. 그런데 오른쪽 직진 차로에 있던 차 한 대가 갑자기 머리를 들이밀더니 같이 좌회전을 한다. 왼쪽으로 운전대를 꺾어 간신히 차를 피하고는 '빵!' 하고 경적을 울렸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경적의 크기와 길이다. 손바닥으로 터치하듯 경쾌하게 '빵!' 할 것이냐, 아니면 감정을 잔뜩 담아 주먹으로 '빠아아아아앙!' 할 것이냐. 모두가 전투태세로 운전대를 잡은 도로 위에서 경적 소리는 수많은 의미로 전해진다.

내가 울린 '빵!' 소리는 대략 이런 뜻이었다. '직진 차로에서 좌회전 차로로 끼어들려면 적어도 깜빡이는 켜셔야지요!' 그런데 옆 차가 핸들을 홱 꺾더니만 갑자기 내 앞을 가로막고 선다. 급기야 운전석 차 문이 열리고는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얼굴이 벌게져서 다가와 조수석 유리창을 두드리는 게 아닌가. 창문이 내려가는 동시에 내 귀에 와서 박힌 건 "이X 얻다 대고 빵빵거려! 이 XXX이 아침부터 재수 없게!" 욕을 한참이나 퍼붓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운전석에 올라타 사라져버린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 정신을 못 차리는데 뒤에 있던 차들이 이젠 나에게 '빵빵'대기 시작한다. '길 막고 있지 말고 제발 비키라'는 말이겠지. 눈물이 핑 돈다. 한마디 대꾸도 하지 못한 서러움인지 아침부터 시원하게 들은 욕 잔치의 황당함인지. '아 정말 우리 이러지 말아요.' 빠아아아아아앙~ 경적을 길게 울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