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부산 한 다방에서 여성 종업원을 살해한 뒤 시신을 마대에 넣어 인근 바다에 버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남성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장기 미제 사건이었던 이 사건은 15년 만의 경찰 재수사로 재판이 시작됐지만, 다시 미궁으로 돌아가게 됐다.

2002년 부산 강서구 바다에서 다방 종업원 시신이 담긴 마대자루가 발견됐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강도살인으로 기소된 양모(48)씨의 상고심 선고 공판에서 검찰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이 선고한 무죄를 확정했다고 22일 밝혔다.

양씨는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5월 21일 부산 사상구 괘법동의 태양다방에서 퇴근하던 A(당시 22세)씨를 납치해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 시신은 범행 9일 만에 마대 자루에 담긴 채 강서구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양씨는 범행 다음 날 A씨 예금통장에서 296만원을 인출하고, 같은해 6월 12일 북구에 있는 한 은행에서 지인 2명을 시켜 A씨 적금을 해지해 돈을 챙긴 혐의도 받았다.

경찰은 지난 2015년 살인사건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일명 태완이법)이 개정된 뒤 이 사건 재수사에 나섰고, 2017년 양모(48)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붙잡아 재판에 넘겼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는 배심원 9명 중 7명이 무기징역과 사형의견을 낸 것을 고려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심도 원심 선고를 유지했다. 1⋅2심 선고에서 양씨에게 적용된 유력한 증거는 ‘함께 시신이 든 마대를 옮겼다’는 동거녀 진술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진술의 신빙성을 중점으로 ‘중대 범죄에서 유죄를 인정하는 데 한 치의 의혹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2심 재판을 부산고법으로 파기 환송했다.

이에 부산고법은 지난 7월 "경찰이 주도면밀하게 수사하지 못 했고, 범행은 의심스러우나 유죄를 증명할 간접증거가 없다"며 양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부산고법은 "동거녀 진술이 바뀌었는데, 경찰이 영상녹화를 하지 않아 어떤 과정을 거쳐 변경된 건지 알 수 없다"며 진술의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간접 증거에 대한 판단을 다시 받아보겠다"고 대법원에 재상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재판부는 "직접증거에 버금갈 정도로 증명력을 가진 간접증거가 없다"며 "인정된 간접증거를 관련지어 보더라도 유죄 증명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제3자 범행 가능성도 강도살인 혐의와 직접 상관이 없다고 판단했다. 또 "원심이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것은 대법원 환송판결의 취지에 따른 것으로 정당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