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암군에 있는 산림청 영암국유림관리소는 작년 12월 '덩굴류 제거단' 채용 공고를 급히 냈다. 12월 18일부터 28일까지 달랑 열흘 남짓 일할 일꾼 30명을 긴급 모집하는 내용이었다. 도로변이나 숲길 주변에 마구 자란 덩굴 등을 잘라내는 일을 하는 이들에겐 일당 6만3240원을 준다고 했다. 산림청은 이처럼 덩굴 뽑기, 농촌 폐기물 소각 같은 초단기 일자리 1335개를 만들겠다며 예비비 32억3800만원을 타갔다. 20일 국회 추경호(자유한국당) 의원이 기획재정부로부터 입수한 작년 연말 예비비 지출결정액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작년 10월 30일과 12월 4일 국무회의에서 예비비 561억4600만원을 지출 의결해 10개 정부 기관을 통해 초단기 일자리 1만8859개를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고용 참사에 비상금 끌어다 '코미디' 같은 일자리 급조

정부가 예비비로 1명당 288만원짜리 초단기 일자리를 급조하기로 결정한 시점은 8월 고용 동향이 발표된 이후다. 작년 8월 취업자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영향으로 자영업 등이 직격탄을 맞아 불과 3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만~30만명은 돼야 정상인 취업자 증가 폭이 자칫 마이너스(-)로 떨어질 뻔한 것이다. 고용 쇼크에 놀란 정부는 각종 공공기관을 동원해 '빈 강의실 불 끄기' 같은 단기 일자리를 만들었는데, 이것도 모자라 '국가 비상금'인 예비비까지 '일자리 부풀리기'에 동원했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예비비는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의 지출 또는 예산 초과 지출에 충당하기 위해' 편성한다. 천재지변 같은 급한 상황에 쓰려고 떼어둔 일종의 비상금을 정부가 마치 '쌈짓돈'처럼 일자리 부풀리기에 조직적으로 가져다 쓴 셈이다. 정부가 예비비를 일자리에 쓴 것은 최근 10년간 지난해가 유일했다.

이렇게 해서 만든 초단기 일자리는 대부분 황당한 것들이었다. 예컨대 농식품부는 예비비 192억6500만원을 타내 영농 폐기물 처리 인력이나 조류독감(AI) 예방 철새 감시 요원 일자리 5883개를 만들었다. 환경부는 예비비 31억7600만원을 가져다가 국립공원 산불 감시와 청소 요원 일자리 1859개를 만들었다. 해수부의 경우엔 예비비 31억7600만원으로 해양 쓰레기 처리 일자리 1582개를 만들기로 했는데, 연말에 하도 급하게 집행하느라 제대로 된 채용 공고 등도 거치지 않은 정황이 드러났다. 당시 해수부 요청으로 단기 일자리 업무를 위탁받았던 한국어촌어항공단 측은 "채용 공고하기가 너무 촉박해서 각 지역 어촌계와 지자체 추천을 받아 채용을 했다"고 밝혔다.

◇혈세로 만든 알바 일자리, 해마다 급증

정부의 땜질식 일자리 만들기는 올해 더 본격화했다. 올해 직접 일자리 사업에만 2조원 넘는 혈세가 투입됐다. 이 덕분에 올해 고용 시장은 양적으로는 2017년 이전 수준을 회복했지만, 질적으로는 제조업 일자리와 30·40대 일자리가 감소하는 등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20일 브리핑에서 "경기의 어려움 속에서도 고용 회복세가 뚜렷하다. 일자리 정책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고 자화자찬했다. 땜질식 일자리 만들기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노인 빈곤율이 높은 상황에서 정부가 대책을 적극 마련하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40대 취업난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대책을 고민하겠다"고 했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초단기 일자리에 예비비까지 소진해 버렸다는 것은 재정 원칙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정부 정책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