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계는 1989년 9월 5일을 '싱가포르 대첩'의 날로 기억한다. 조훈현이 녜웨이핑(聶衛平)을 따돌리고 제1회 잉씨배서 우승한 날이다. 사실상 세계 최초 국제 메이저 대회였던 이 승부는 본인들과 한·중 양국 바둑계 운명을 모두 갈라놓았다.

단기 필마로 출전한 조훈현의 우승으로 한국 바둑의 국제적 위상은 올라갔고 국내엔 폭발적 바둑 붐이 도래했다. 반면 중국 바둑계는 이후 오랜 침체의 길을 걸었다. 조훈현은 이 우승을 신호탄 삼아 모두 9차례나 세계 정상에 섰지만 녜웨이핑은 패배 후유증에 시달리다 평생 한 번의 국제 우승컵도 들어보지 못했다.

운명의 결승 5번기 최종국에서 마주 앉은 조훈현(오른쪽)과 녜웨이핑. 89년 9월 5일 싱가포르 웨스틴 스탠퍼드호텔 특별 대국실이다.

30년 세월이 흘러 조훈현은 67세, 녜웨이핑은 68세가 됐다. 고희(古稀)를 눈앞에 둔 두 노장이 그날의 격전을 기념하는 대국을 펼친다. 공식 명칭은 '초대 잉씨배 제패 30주년 기념 특별 대국'. 11월 2일 한국기원 내 바둑TV 스튜디오에서 마주 앉는다.

싱가포르 회전서 내상(內傷)을 입기 전 녜웨이핑은 세계 톱스타 중 한 명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80년대 후반 펼쳐졌던 중일수퍼대항전서 그는 파죽의 11연승을 기록해 중국 바둑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80년대에 세 차례나 국내 전관(全冠) 제패 신화를 이뤘던 조훈현과는 평생 경쟁 관계로 운명 지어졌을지 모른다. 양웅이 이번 맞대결 제안을 즉각 수락한 배경이다.

두 기사는 평생 18번 맞붙어 조훈현이 12승 6패로 앞서 있다. '싱가포르 대첩' 후 한때는 9승 3패까지 벌어졌었다. 이후 녜웨이핑이 3연승(96~97년)해 추격하는 듯했으나 2000년 이후 다시 조훈현이 3연승 중이다. 거의 모든 대국이 조훈현의 날렵함과 녜웨이핑의 두터움이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내용이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매번 더 거칠고 치열해져왔다.

제한 시간에서도 전운이 느껴진다. 1인당 1시간 타임아웃 방식이다. 20분 초과 시 2집, 다시 20분을 초과하면 4집의 벌점이 부과된다. 잉씨배 기념 대결이란 취지에 맞춰 시간과 집을 맞바꾸는 잉씨배 룰을 적용키로 한 것. 흑이 부담할 덤 역시 잉씨배 방식인 전만법에 맞춰 8점(7집 반)이다.

한국기원 2층에서 진행될 공개 해설엔 이창호 9단이 특별 게스트로 참여한다. 이 9단은 조 9단의 애제자인 동시에 2001년 제4회 잉씨배를 정복한 '우승 후계자'이기도 하다. 대국 종료 후엔 대국자 인터뷰와 사인회, 다면기 등도 곁들여질 계획이다.

아쉬운 점은 파이트 머니 부분이다. 바둑TV 관계자는 "조훈현 9단에겐 현역 의원의 영리 활동 금지 규정에 따라 대국료를 지급할 수 없다. 녜웨이핑 9단의 대국료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